70년대 중반이나 80년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들의 직업은 대개 이민 도착하는 첫날 공항에 마중 나간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좌우된다. 세탁소를 하는 사람이 마중 나가면 세탁업을 하고, 봉제업자가 마중 나가면 역시 봉제업의 길을 걷는다.
사실 봉제업이나 세탁소는 밑천이 있는 사람들이 오픈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시다바리(?)를 하거나 대개는 청소와 페인팅, 잔디 깎는 직업 등이 주류였다. 이 점은 미국 동부의 한인사회에서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 오는 한인들이 전통적으로 충분한 돈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게는 몇 백달러, 많아야 몇 천달러를 가지고 미국에 와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성공한 한인들은 그것을 자랑하는 맛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민 초기에 생활자금이 충분하지 않은 것은 그만큼 직업 선택의 여지도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하는 좋은 직장,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어학 공부도 해야 하고 일정 기간 동안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달랑 몇백 달러뿐인 사람은 그 일이 좋은지 나쁜지를 따질 여유가 없다. 당장의 생계를 위해서 아무 일이나 붙잡고 할 수밖에 없다.
살기 위해서 공항에 처음 마중 나왔던 사람에게 매달리고, 그를 통해 자리를 알아보고, 그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다. 그러나 지금도 대부분의 재미 한인들은 돈을 싸들고 이민을 오는 것에 대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물정을 모르는 이민 초심자가 투자금을 날리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여유 자금은 은행이나 펀드에 묻어두고 미국 물정을 충분히 안 뒤에 시작해도 늦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한다. 우리 뉴스타부동산 소속의 탑 에이전트 중에도 그런 과정을 거쳐 자리 잡은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준비되면 시작하라 한다. 그림을 굵게 그린다는 것이 중요하다. 옛날에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와 지금은 분명히 틀린다. 그때는 미국이 먼 달나라 곁에 있는 것쯤으로 여겼고, 미국을 잘 모르기에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거의가 미국화가 되어 있고 생각도 겉모습도 먹거리도 거의 미국화가 되어있고 사업의 업종 또한 비슷하며 정보의 다양화로 인해서 미국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자기 분야에 아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다만, 미국의 주류사회를 지탱하는 경찰, 시공무원, 세무공무원 등으로 진출하는 기회가 적은 것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문제다. 베트남 보트피플의 경우는 미국에서 쉽게 정착했다. 그들은 보트에 무수히 많은 보물을 숨겨왔다고 하는데, 거기에다 미국 정부로부터 정착 자금으로 6,000달러 정도씩을 받기까지 했다.
당연히 영어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었고, 영어가 되는 만큼 직업 선택도 유리했다. 그래서 베트남인 커뮤니티는 이민 초창기부터 형성되어 쉽게 번영을 누리고 있다. 무수한 자금 뒤에는 그 사람들만의 고용 창출이 있었고 시장의 대형화가 가능했고 베트남 냄새를 풍길 수 있는 도시화의 건설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본의 대형화는 쉬운 돈 즉 여유 자본이 있기에 월남을 나타내는 건물도 많이 있다.
미국 생활 25년이 넘은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 그렇게 열악한 조건에서 잡초처럼 생존한 한인 이민자들의 성공률은 아주 높다. 성공한 뒤에도 그러한 관성으로 인해 미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안정적으로 중류 이상의 주택가로 스며들어 주류의 일원이 된다.
이민 한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맨주먹이다시피 왔으나 이민자들은 나름대로 한국에서 교육받을 만큼 받고 한 가닥 하던 사람들이 많다. 그런 그들이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two job’ ‘three job’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활력이 있으면서, 돈을 모으면 그것을 굴리는 법도 안다는 것은 미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그러니 곧 그들이 일하던 가게에서 독립하여 스스로 사업체를 만들고 그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수중에 돈이 없어서 선배 이민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자리가 나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다. 나를 마중 나왔던 사람은 손위 처남이었다. 1972년에 이민 와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으니 한인들이 미국에서 정착하는 공식대로라면 나도 약사로 일을 시작했어야 맞다. 하지만 약사를 하기에는 미국이 서툴기도 했고 약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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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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