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6월 롱비치의 최고 부유층 주택가에서 두발의 총성이 울렸다. 외과의사 세이모어 알번의 21세짜리 딸 줄리가 자신의 침실에서 보이프렌드가 등 뒤에서 쏜 총에 맞은 것이다. 롱비치의 유력지 프레스 텔레그램 회장의 아들인 보이프렌드 브래들리는 저격후 자살을 시도했으나 경상에 그쳤다. 브래들리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로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 센세이셔널한 뉴스는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결국 줄리를 하반신 마비의 불구로 만든 총은 기막히게도 아버지 세이모어의 것이었다. 총기규제 캠페인에 앞장서며 강인한 의지로 검사가 된 줄리는 재활에 성공하기까지 끊임없이 곁에서 도와준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자신과 아버지 사이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음을 절감한다. 아버지의 총에 대한 애착이다. 자신의 총에 딸이 불구가 되었다면 두 번 다시 총을 쳐다보기조차 끔찍해야 할 텐데 아버지는 내내 ‘총 탓이 아니다’를 견지한다. 8순을 넘어선 요즘도 상당수의 총기들을 곁에 두고 애지중지 아끼고 있다.
닥터 알번 만이 아니다. 미국인의 총에 대한 집착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지난해 32명이 희생된 버지니아텍 참사가 발생했을 때 그 충격이 총기집착에서 벗어날 확실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결과는 오히려 반대현상을 나타내 왔다. 상대적으로 희생자 수가 적은 사건에 대한 무감각한 마비증상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리는 샤핑몰에서, 예배를 보던 교회에서, 스쿨버스에서 내리던 중학생들을 향해…미 전국 어디에도 성역이 없이 총탄은 계속 난무해왔다. 지난 2월만 해도 첫2주 동안 미 전국에서 총기사건이 잇달았었다. 일리노이와 루이지애나의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총에 맞아 쓰러진 난사사건이 연달아 발생했고 회의 중인 시의회장과 영업 중인 옷가게에서도 총성이 울리며 대여섯명씩 목숨을 잃었다. 8학년짜리가 게이라는 이유로 동급생을 쏘아 죽였고 스왓팀으로 출동한 베테란 경찰이 일가족을 살해한 20대 청년의 총격에 희생되기도 했다.
비슷한 사건을 예방할 대응책이 없다. 사방에 총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미국내 개인소유의 총기는 대략 2억5천정, 그중 25%가 권총이다. 그런데 총기사망의 70~90%는 권총에 의해서다. 그렇다면 권총만 잘 규제해도 희생자를 대폭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총기규제법으로 꼽히는 워싱턴 DC의 권총소지금지법은 권총 범죄율이 치솟으면서 제정되었다. 1974년 DC에서 발생한 285건의 실인사건 중 155건이 권총에 의한 것이었고 같은 해 강간범들이 사용한 총기가 모두 권총이었다. 권총소지금지법은 1976년 시의회를 통과했다.
DC의 권총소지금지법을 둘러싼 총기논쟁이 다시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총기규제는 낙태나 동성애, 인종 못지않게 미국의 여론을 양극으로 분열시켜온 문화 갈등이다. 새롭게 불붙은 이번 논쟁의 선두에 선 것은 연방대법원이다. 지난 주 이 법의 합헌성에 대한 첫 심리가 열렸다. ‘워싱턴DC 대 헬러’라고 명명된 케이스다. 1년전 연방항소법원에서 DC법안이 개인의 총기소유권을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례적 판결이 나오자 DC정부가 대법원에 상고한 것이다.
막강한 총기협회를 비롯한 보수진영을 든든한 후원세력으로 업고 있는 원고는 딕 앤소니 헬러라는 정부청사 경비원이다. ‘정부건물을 지킬 때는 권총을 휴대할 수 있는 내가, 왜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집에서는 권총을 휴대할 수 없는가. 총기소유권은 헌법에도 보장되어있다’가 원고 측 기본 주장이다.
논쟁의 쟁점은 수정헌법 제2조다. 요즘 한창 뜨고있는 법조문이니 한번쯤 눈여겨 보아둘만 하다. 3개의 쉼표와 27개의 단어로 구성된 애매한 문장이다 : “잘 규제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사람들(people)이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제2조에 대한 해석은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엇갈린다. 민병대, 즉 요즘의 주방위군처럼 집단적으로 총기를 소유하는 권리를 뜻하는 것인가, 개인의 총기소유권 보장인가. 전자는 총기규제를 지지하는 진보진영 해석이고 후자는 반대하는 보수진영 주장이다.
대법원의 최종판결은 6월말에나 나올 것이다. 그러나 지난 주 심리의 내용을 보면 결과는 예상된다. 로버츠 대법원답게 보수색이 완연하다. 권총소지금지법은 위헌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캐스팅보트로 간주되는 앤소니 케네디 대법관도 ‘개인의 권리’라고 잘라 말했으니 이제 미국인의 총기소유권은 한층 더 그 입지를 굳히게 될 전망이다.
물론 수정헌법 제1조인 언론표현의 자유에도 합리적 규제를 할 수 있으니 총기소유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가할 수 있는 총기소유에 대한 합헌적 규제는 어느 선까지일까. 연방대법원이 어떤 가이드라인을 줄지 역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 주 심리가 열리고 있는 대법원 앞에선 찬반시위가 한창이었다. “총이 늘어나면…”“범죄가 줄어든다!”라고 한쪽에서 소리치면 반대편에선 “총이 늘어나면…”“죽음도 늘어난다!”고 맞받아쳤다. 총기에 인질로 잡혀있는 미국의 고집스런 단면이었다.
오늘도 미국 어디에선가 30여명의 사람들이 총에 맞아 숨질 것이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어떤 정치가도 앞장서 총기문화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변화의 기수 버락 오바마 마저 수정헌법 제2조는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꼬리를 내리고 있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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