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던져준 단상
1. 소리로 보는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
장면 하나로 오래 기억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소리들’로 기억되는 영화도 있다. <파리넬리>나 <전망 좋은 방>, 혹은 <피아니스트>나 <세상의 모든 아침> 같은 기막히게 아름다운 사운드 트랙을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당연 그렇할 터. 그러나, 여기, 기막히게 아름다운 사운드 트랙과는 먼 곳에 있음에도 하나의 소리, 지울 수 없는 ‘소리들’로 아주 뚜렷하게 기억되는 영화가 있다. 다름 아닌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이 바로 그것.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All The President’s Men>은 한국에서 <워터 게이트>라는 좀 더 노골적인 이름을 달고 개봉된 앨런 파큘라 감독의 1976년 산 문제작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일 터. 무엇보다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그러했으며, 주제가 그러했고, 또한 기자 번스타인과 우드워드로 분한 더스틴 호프만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기자보다 더 기자다운 연기가 그러했다. 그런데 말이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소리들’이다.
닉슨 대통령의 낙마와 관계된 도청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 기자 번스타인과 우드워드의 이야기인 이 영화의 러닝 타임 138분을 이끄는 하나의 소리, 총소리 같기도 하고 뭔가를 손가락이 끊어져라 죽기살기로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한 그것. ‘타다닥 탁탁’, 하나의 배경음악처럼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이 소리의 정체란 다름 아닌 타자기 소리다. 타다닥 탁탁, 번스타인과 우드워드가 시종일관 두드려 대는 이 타자기 소리는, 기자로서의 직업의식과 진실을 향한 열망과 골리앗처럼 버티고 선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양심의 사투에 대한 상징적 ‘소리들’이다.
2. 타자기가 의미하는 것
사실, 이 영화처럼 텔레비젼 스크린, 타이프 라이터, 제록스 복사기, 도서관 카드, 특별 복사지 등과 같은 일명 데이터 기계라 불리우는 소품들의 클로우즈-업이 작품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영화도 보기 힘들다. 특히 도입부의 44키 대형 타자기의 중심 활자가 스크린 전체를 장악하는 풀 클로우즈-업 장면 등은 하나의 거대한 은유의 환을 생산하고 잇으며, 작품의 주제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앨런 페큐라 감독은 1976년 리차드 톰슨과의 인터뷰에서, “타이프라이터의 중심 활자들, 도서관 목록 카드, 그리고 인명록과 우드워드 기자의 노트와 메모 용지철, 연필, 펜 이런 요소들은 모두 특이한 전쟁을 수행해 나가는 무기를 뜻한다.”라고 언급했다.
페큐라 감독에 기대어 보면, 전쟁이란 결국 부패한 정치 권력과의 사투를 의미하는 것이며, 타자기는 이 특이한 전쟁을 수행하는 아주 특이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결국, 닉슨 대통령과 닉슨 행정부로 상징되는 부패한 권력과 정치를 무너뜨리고 정의가 승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총이나 탱크가 아니라 바로 ‘타자기’라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주 오래된 격언 하나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냐고 묻는가? 그것은 바로, “펜은 총보다 강하다”라는 아주 짧은 격언이다.
“활자는 탄알이며, 타이프 라이터 키는 총과 같다. 타이프 라이터와 같이 조그마한 물건에 내재한 힘은 바로 저 거대한 빌딩 숲과, 우리가 닿을 수 없는 텔레비젼 화면 뒤에 숨어 있는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는 작은 것들의 상징이다.”
페큐라 감독의 언급처럼, 타자기 즉, 펜은 이 시대의 무혈혁명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비살상용 무기이다. 그러면, 기자는? 기자는 다름 아닌 조자룡 헌 칼 쓰듯 타이프 라이터를 무기 삼아 세상의 모든 악과 싸워야할 장수 쯤이 되지 않을까.
김남주의 말을 차용해 보면, 기자라는 직업은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자, 세상의 모든 불의를 쏘아야 하는 저격수라 불러도 좋으리라.
3. 정론직필로 살아가기
어제, 오랜만의 낭보(朗報)를 접하고, 나는 기자의 본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필기시험에 면접시험까지 보고, 50대 1의 문턱을 넘어 7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대학 신문 수습 기자가 되었던 그 해 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단발 머리에, 속된 말로 고삐리 때도 아직 못 벗은 아마츄어 대학 신문 기자가 신문사 정문에 거양되어 있던 ‘정론직필’ 넉 자를 제 가슴 속에 아로 새기던 것도 벌써 20년 전의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뵈었던 선배 한 분이 소수계 언론 연합(New America Media)에서 선정한 4인의 대표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어제에야 들었다.
사는 것 자체가 정론직필이던 그 선배는 미국 땅에서도 정론직필, 넉 자를 실천하며 살아간다. 적절히 때도 묻고, 적절히 타협하면서, 적절히 편안하게 살아가자면 그야말로 만사 또한 형통할 일임에도, 이 정론직필 선배는 아직도 정론직필 살아가므로 가끔씩 피곤한 일이나 억울한 일도 많이 당함을 나는 잘 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3000 여 개에 달하는 소수 언론계의 대표로 선출된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됨은 당연한 이치일게다.
페큐라 감독의 말을 다시 빌자면, 타자기와 함께 사회의 어두운 곳을 일일이 저격하는 저격수의 심정으로 살아가는 선배는 또 다른 번스타인이고 우드워드일지 모른다.
선배의 건필(健筆), 용필(勇筆), 장필(長筆)을 기원하며, 기자의 본분이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하루다.
<정영화 기자> drclara@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