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원활한 의사소통 이뤄져야
많은 한인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건만, 유독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곤 한다. 말을 제대로 못하니, 그들이 자신감 없어 보인다. 우등생이면 무엇 하나.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도 남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무언가 교육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의 이런 고민은 대부분 한인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의 하나일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아이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남 앞에서 말도 잘 못하는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은 더욱 참담하기만 하다.
우리 아이들이 발표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먼저 지적해 볼 수 있는 점은 비영어권 이민 1세대 자녀가 겪는 의사소통 기회의 부족에 있다. 특히 공립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자유롭게 토론식 수업을 통해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강의식 수업을 2~3시까지 마치고 집에 오면 한국어를 사용하게 된다. 부모는 영어에 익숙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한국어가 자유롭지 못해 서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애프터스쿨에 다니는 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아이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해도 포멀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포멀한 영어 스피치를 익힐 기회가 적다.
둘째, 우리 아이들과 한인 부모의 관계는 자못 수직적이다. 항상 부모는 아이에게 말할 내용을 미리 준비해 놓고,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권하기 일쑤다. ‘엄마 생각에 너 피아노를 배우면 좋겠다. 이번 주 토요일부터 배우러 갈 거다’는 식이다. 왜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지, 배우면 무엇이 좋을 것인지에 관한 논의는 배제되어 있다. 다른 학부모로부터 스포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부모는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엄마가 아는 아이가 테니스를 배우는데 아주 좋다더라. 너도 다음 달부터 테니스 배우러 가자’라고 하면 아이들의 반응은 어떻겠는가? 대체로 ‘예’ 아니면 ‘싫어요’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왜 싫은지, 또는 왜 좋은지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이나, 입학 전형에 필요한 인터뷰 연습을 하다보면, 학생이 자신을 설명하지 못해 엄마가 대신 답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길러지지 않은 탓이다.
셋째, 언어 교육의 방향에 문제가 있다. 부모들이 자녀의 학교 성적이나 표준시험 향상에 언어 교육의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시험에 반영되는 작문이나 어휘력 증진에 치중한다. 시중 대부분의 영어 관련 학원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이를 벗어나고 있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문 능력 못지않게 구술 능력 즉 발표력도 중요하다. 리더가 되기 위한 덕목과 자질이 여러 가지 필요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공식적인 석상에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많은 한인 학생들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발표력을 기르기 어려운 처지에서 자라는 데다, 별도로 스피치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 없어 보이는 것이다.
이른 바 주류사회에 진출한 젊은 한인들이 ‘글래스 실링, 즉 유리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를 인종차별의 시각에서 설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잘하였는지 모르지만, 남을 설득할 만한 언변도 없이, 타인종 출신들과 어울려 사귀려는 노력도 해 보지 않고, 직장이나 연구 기관에서 고립되어 일만 한다는 한인들의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디렉터나 팀장 등 리더의 자리를 맡을 기회가 주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한인 타운에도 스피치 능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코암 영재 교육원에서도 기존의 디베이트 프로그램에 이어, 이번 달부터 National Forensic League라는 미국 내 가장 역사가 긴 단체가 계발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스피치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도 바로 이 단체에서 스피치 기술을 익힌 바 있다. 별도로 광고문을 돌린 것도 아니지만, 스피치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사실에 놀랐다. 비록 엄마의 손에 끌려 참석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학교나 학원에서 제공하는 여느 프로그램과 달리 매번 재미있어 하는 학생들의 반응을 보고 있다. 이제 우리 한인 학생들도 더 이상 ‘공부는 잘하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전형적 모습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아 흐뭇하기만 하다.
(213)500-9067
알렉스 정
코암 영재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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