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나 군대에 입대하던 날짜같이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하는 숫자들이 있다. 나에게는 특별히 잊히지 않는 그런 숫자가 하나 더 있다. 1982년 1월 23일, 미국 생활을 시작한 첫날, 즉 19820123이다.
그날 나는 수중에 단돈 300달러를 지니고 아메리칸 드림을 생각하면서 두 번째로 세상에 태어났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단지 과거의 일인가? 나는 이 물음에 진지하게 답할 수 있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일이라고.
사실 혜택을 받고 태어난 젊은이들한테 ‘꿈’이라는 어휘는 그리 세련된 개념이 아니다. 사랑을 고백할 때라든가, 누군가에게 귀여움을 받고자 할 때 ‘꿈’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면 좋은 점수를 따지 못한다. 미래에 이룰 일을 가불하여 쓰는 셈이니 결국 지금 당장은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이나 코리안 드림은 그 말이 주는 뉘앙스가 어떻든 궁색한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구든 돌아서서 혼자가 되면 자신만의 꿈을 챙기고 연연해한다. 여한이 없을 만큼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도 아직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있게 마련이다. 부자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게 된 젊은이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행복을 바라고 즐거운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욕심은 사람이 죽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지금 부모나 배우자, 혹은 연인이나 친구들 모르게 미래를 위해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그 범위를 미국으로까지 넓혀보기를 나는 권한다. 미국은 아직도 기회가 많은 곳이다. 미국을 많이 다니면서 미국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 미국은 3%도 개발되지 않은 미숙지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의 당신들은 예전의 나보다 더 똑똑하고, 수중에 지닌 여유 자금도 풍부하고, 영어도 잘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에 이같이 좋은 조건은 없다.
1982년 무렵에는 상당히 성공한 한인 기업가라도 매출 3,000만 달러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았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때 매출액 기준으로 3억 달러를 달성한 한인 기업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300달러를 가지고 시작한 나는 2005년, 2006년에 30억 달러의 매출 실적을 기록했다. 마찬가지다. 당신이 지금 시작한다면 20여 년 뒤에는 나의 30억 달러를 훨씬 능가하는 300억, 3,0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수도 있다.
한국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고, 특히 젊은 세대의 미국에 대한 인식과 시각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얘기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에서 기회를 잡아보라고 강조하고 싶다.
자본을 투자하든 머리를 투자하든, 아니면 기술력을 투자하든 간에 투자하기에는 미국이 가장 유망하고 안전하다. 뿐만 아니라 투자에 성공했을 때 차지할 몫도 훨씬 크다. 잘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나 캐나다, 북구 등 복지 시스템이 발달한 나라들은 성공한 뒤에 당신이 차지할 몫도 작다.
“중국”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불안한 것이 문제다. 인적이 드문 교차로에서 붉은 신호등이 켜졌을 때 미국과 중국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비유하자면, 미국에서 신호등을 받은 차는 틀림없이 신호등이 바뀔 때 까지 차는 멈춰 서지만 중국에서 신호등에 걸린 차는 슬금슬금 지나간다. 한국에 차는 어느쪽인가? 내가 올때는 슬금슬금 가는 쪽이었지만 지금은 서리라 생각한다.
룰이 지켜지는 공정한 사회가 미국이라는 얘기다. 외국인으로 머리나 기술력, 혹은 노동력을 투자하는 입장이라면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25년 전의 나는 그렇게까지 복잡한 계산서를 가지고 미국행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사리를 분별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데 서툴렀다. 흑백필름으로나 억지로 볼 수 있는, 무작정 상경한 시골내기 같았다.
그 무렵은 레이거노믹스라고 하여 미국이 전례 없이 번영을 누리던 때였다. 미국의 국제적 지위나 문명의 선진성이 지금보다 월등했다. 세계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여기며 동경하기에 충분한 나라였다. 오늘날 레이건이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뛰어난 대통령 중에 한사람으로 평가받는 것도 그런 경제적 번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미국도 그 점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LA공항에 발을 디뎠을 때 내가 느낀 감동을 지금 도착하는 젊은 세대들도 고스란히 느낀다. 맑은 공기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디 푸른 하늘이 20년 시차를 두고 있어도 다르지 않다.
그때 나는 이곳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의 젊은이들도 그럴 것이다. LA기후는 참 별종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천혜의 날씨는 없다. 세상을 똑같은 시간에 비슷한 환경에 살면서 이런 곳에서 살수 있다는 것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사막기후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우선 겨울에 크게 춥지 않은 것도 고생을 각오하고 있던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피교육자는 춥고 배고프고 졸리는 것이 제일 참을 수 없다고 한다. 그중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추위란 것을 1월초부터 3개월간 해병대 훈련을 받아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차를 타고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이 현실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낯선 이국땅의 키 큰 야자수가 서 있는 길을 달리는 동안 망망대해에 조각배를 타고 나온 것처럼 막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때 내 주머니에는 달랑 300달러가 들어 있었고, 그 돈으로 정착하고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야만 했다.
미국 이민을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안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낯선 땅에 와서 안정을 바라는 것이 사치였다. 내가 벌어 내가 공부하며, 내 미래는 내가 책임지고, 내 가정은 내가 맡는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물론 나는 한국인이고 그러니 무수히 많은 한국인이 LA에 와서 직업을 갖고 정착해간 패턴을 따르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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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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