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힐러리의 오하이오·텍사스주 승리직후 민주당 경선이 이전투구의 장기전으로 우려되자 CNN의 래리 킹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1968년 민주당 전당대회가 재현될 것인가?”
68년 전당대회는 민주당에겐 글자그대로 악몽이었다. 아니, 68년 자체가 악몽이었다.
현직인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민주당 경선의 확실한 선두주자였던 연초만 해도 상황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로버트 케네디가 반전그룹 후보권유를 거절한 후 대신 나선 유진 매카시는 무명의 상원의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매카시가 3월초 뉴햄프셔에서 42%의 득표로 돌풍을 일으키고 베트남 전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선거전은 예측불허의 반전을 거듭했다 : 뉴햄프셔 예선 나흘뒤 케네디가 출마를 선언하고 2주후 존슨이 사퇴를 발표했으며 다시 1주일이 채 가기 전에 마틴 루터 킹목사가 암살당했고 급기야는 6월 캘리포니아 예선 승리직후 케네디가 암살당했다.
미전국 대도시마다 폭동시위가 격화되던 그해 여름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대회장 안팎으로 전운이 감돌았다. 지역예선에서 상당한 득표율을 확보한 것은 매카시였지만 존슨이 장악했던 민주당 지도부는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을 후보로 밀어붙였다. 대회장 안에선 항의하는 대의원들이 ‘우리는 승리하리라’ 노래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고 대회장 밖에선 돼지를 후보로 풀어놓은 반전그룹이 경찰과 맞붙었다. 시카고의 불도저시장 리처드 데일리가 투입한 무려 2만명 진압병력의 곤봉은 시위대는 물론, 취재진과 의료진, 관광객까지 가리지 않고 겨냥했다. 수백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유혈충돌의 아수라장은 TV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미전국의 안방으로 전달되었고 ‘미국의 보다 나은 미래’는커녕 기본적 사회질서조차 보장 못한 민주당은 11월 본선에서 패배했다.
값비싼 희생을 치른 이 사태는 경선제도가 민주화로 가는 길을 열었다. 비주류, 일반당원의 보이스를 대폭 강화하는 개혁을 추진, 지역경선에서 승자독식 대신 득표율에 따른 비례배분제도가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맹점은 즉시 드러났다. ‘민심 반영’에는 성공했으나 ‘당심 반영’은 설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후유증은 당장 72년 선거에서 나타났다. 민의로 후보에 오른 급진 좌파 조지 맥거번의 허약한 본선경쟁력이 당 지도부에겐 훤히 보였지만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민주당은 또 참패했다.
당의 영향력 회복이 시급했다. 다시 개혁이 추진되었고 82년 헌트위원회 개혁안이 채택되었다. 헌트위 개혁안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2008년 민주당 경선의 결과를 손에 쥐게 된 수퍼대의원 제도다.
수퍼대의원은 별명이고 공식명칭은 ‘비서약 당지도자 및 민선공직 대의원’이다. 전체대의원수의 20%인 796명이지만 사망, 이주, 사임 등에 따라 약간씩 변할 수 있다. 금년엔 민주당 전국위 관계자 411명, 연방의원 258명, 주지사 27명, 전직공직자 및 원로 23명, 주위원회 선출 대의원 76명으로 구성된다.
수퍼대의원은 창설된지 20여년이 되도록 존재이유를 변변히 내세울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금년은 다르다.
지금으로선 오바마는 물론, 힐러리도 전혀 사퇴할 태세가 아니다. 플로리다와 미시건의 재예선 역시 현재론 넘어야할 산이 많다. 설사 실시된다 해도 대의원 숫자의 격차를 늘이기 보다는 줄일 공산이 크다.
이래저래 수퍼대의원의 존재가 갈수록 부각되면서 민의를 반영하라는 경고가 나왔다. 대의원을 더 많이 확보한 오바마측 보이스다. 수퍼대의원을 만든 목적이 무엇이냐, 대의를 위해 독자적 판단을 하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수퍼대의원과 끈이 더 많은 힐러리측 주장이다.
보다 나은 경선제도 정착을 위해 채택된 두 개의 제도가 그 시행의 현장에서 상충되고 있는 것이다.
수퍼대의원은 말하자면 프리 에이전트다. 언제라도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 전당대회에서 이들이 던지는 한 표는 예선에서 유권자 1만명의 표와 맞먹는데 당에선 정해놓은 투표지침도 없다. 그래서 책임은 더욱 무겁고 압박감은 갈수록 심해진다.
이들이 생각하는 기본은 당의 단합과 본선 승리다. 유권자의 뜻과 당의 이익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확보한 대의원 숫자나 득표율을 경시하면 당의 단합이 깨어진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숫자 못지않게 주목할 것은 어디서 어떻게 승리했는가이다. 오바마의 29개 다수 주의 승리와 힐러리의 14개 대형주의 승리가 본선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분석해야한다. 가장 큰 두려움은 ‘백악관 탈환실패’이기 때문이다.
숨가쁘게 이어지던 민주당 경선이 오랜만에 긴 휴면기를 맞고 있다. 4월22일 펜실베니아 예선까진 장장 6주나 남았다. 시간을 번 것은 후보들만이 아니다. 수퍼대의원도 신중히 관찰하고 분석할 여유를 얻게 되었다. 6월로 접어들어 경선종료가 가까워지면 전당대회전에 지지표명을 하라는 압박이 가해져올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걸려오는 빌 클린턴이나 미쉘 오바마의 전화조차 반갑지 않을 정도로 깊어가는 이들의 고민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이렇게 대변하고 있다. “제발 우리, 수퍼대의원들의 투표에 관계없이…확실한 승자가 빨리 결정되기를…희망하고 기도하자”
박 록/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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