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연방 준비은행에서 경제 현항 보고서를 내 놓았다. 표지가 베이지색으로 되어 있어 ‘베이지 북’이라고도 불리는 보고서는 격월로 연방 준비은행의 공개시장위원회가 금리조정 정책을 결정하기 2주전쯤에 12개의 지역 연방 준비은행의 경제상항 조사보고를 종합해서 내놓는, 어찌 보면 가장 권위 있고 현장감 있는 경제보고서라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오는 18일에 연방 준비은행은 단기 금리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금융계는 작년 가을부터 내리기 시작한 단기금리를 1% 정도 더 하향 조정할 것을 예측하고 있다. ‘베이지 북’이 미국 경제가 ‘수그러지고 있고’ 또한 ‘약화되고 있다’라고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저성장은 하겠지만 엄밀한 의미의 침체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난 주에 나온 여러 가지 경제지표와 주식시장의 동향, 그리고 경제계의 의견 등은 ‘베이지 북’의 주장보다 경제가 심각함을 나타내고 있다. 주택 차압이 지난 5년래 최고치를 경신했고 일자리 상실이 지난 몇 년래 가장 많았다. 뉴욕 다우존스 산업지수는 계속 베어마켓 현상을 보여주어 2006년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벤 버냉키도 지난 6일 미 의회청문회에서 모기지 마켓의 심각성을 경고하기도 하였다. 모건 스탠리와 체이스 뱅크 등 금융투자기관의 경제전문가들도 미경제의 저성장이 아니라 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현 경기침체의 성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경기회복을 추구하는 의견과 정책결정, 시행에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 된다. 즉 현재 미국경기 침체가 어디에서 왔느냐하는 의미 있는 질문이다.
과거 미국 경제침체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1973년과 1980년의 경기침체는 제1 및 제2 석유 위기로부터 발생했고 1990년 침체는 금융부실로 인해 결과했었다. 2000년~2001년의 경기침체는 정보기술주 거품 붕괴에 기인했음은 잘 알려진 바다. 그러면 2008년에 가능성을 보여주는 경기침체는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자산 거품 후 경기침체’다.
자산 거품 후 경기침체란 소유하고 투자했던 자산(부동산, 주식 등)의 값이 통상 시장가격보다 예상외로 치솟았다가 폭락함으로 말미암아 금융과 재정시장에 경색을 가져오고 소비와 투자를 크게 줄여 경제성장을 제자리걸음하게 만드는 현상을 지칭한다. 미국 경제는 지금까지 이러한 경기침체를 경험하지 않았으나 그 예를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0년 후반과 1980년대는 일본 경제의 최전성기였다. 전후 수출주도의 경제정책을 지향하여 수출의 폭발을 가져오고 경제성장은 거의 두 자리 수에 이르는 호황을 누렸었다. 그 당시 미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구렁텅이를 헤매고 있는 상태였다. 미국의 책방마다 일본 경제 소개책자와 일본기업 경영정책을 알리는 서적으로 홍수를 이루었다.
1990년으로 넘어오면서 일본경제는 자산과 주식시장의 거품 붕괴로 인하여 금융위기와 기업부채 축적을 가져오고 경제성장의 둔화로 지금까지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GDP가 1991년 4조 달러였던 것이 지난 20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여 지금도 4조 달러를 약간 상회하는 데 머물러 있다. 미국과 유로지역의 GDP는 같은 기간 동안 6조 달러에서 각각 14조 달러와 12조 달러로 성장하였음을 비교해볼 때 일본경제가 얼마나 장기침체에 빠져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니케이 225 주식지표도 20년 전 수준의 절반도 못 미치는 주식시장이 이를 증명한다.
일본이 지난 20년 동안 감세, 투자진작, 금리하락 등 경기부양책을 여러 차례 시행하였지만 몇 년 전 고이즈미 정권 시에 약간의 경제회복을 가져오는 듯 하더니 아직도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미국경기부양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얼마 전에 공포한 세금환불의 부시 경기부양정책과 금년 초부터 금리하락을 여러 번 해온 버냉키 정책은 자산거품 후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미국경제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한다. 수출장려와 장기 인프라투자를 내용으로 하는 케인즈식 부양정책이 필요한 것 같다.
백순/연방 노동부선임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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