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한 관원이 예수님께 나아와서는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관원이 영생을 물었을 때 예수님은 조상 적부터 배워온 계명들을 다 지켰느냐고 물으셨다. 이 관원은 간음, 살인, 도적질, 거짓말,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들을 다 지켰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한 가지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가지고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고 하셨다.
신앙은 99%가 아니라 100%를 요구한다. 인간의 연약함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신앙이 목표하는 그 기준은 분명하다. 어느 정도까지가 아니라 끝까지 도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 곧 내면의 마음을 보신다고 하셨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위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는 상대성 원리이다. 사람이 나를 사랑할 때 나도 사랑하게 된다. 어떤 숭고한 사람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무조건적인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어느 누구가 우리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주장한다 하더라도 인정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용규 선교사가 ‘내려놓음’이란 책 다음에 ‘더 내려놓음’ 책을 썼다. 인간은 늘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그 자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평강과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불안과 미래에 대한 자신과 소망을 잃어버린다. 때로는 열등감이 찾아오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확신을 잃어버린다. 내려놓음의 단계에서 더 내려놓음의 단계로 넘어가려면 자기를 비우는 훈련과 연단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물질세계가 줄 수 없는 참다운 부유함과 평안, 행복, 자신감을 얻게 된다.
성경 누가복음을 보면 아버지의 집을 떠난 둘째아들의 인생을 보게 된다. 둘째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상속받을 재산을 받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살기위해 다른 곳으로 떠나 살았다. 자기 의로움과 자기 신뢰와 자기 야망에 가득 차 잠시 동안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말하고 싶은 말을 했고, 보고 싶은 것을 보았고, 가고 싶은 곳을 가 보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고,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만났고, 가지고 싶은 것을 가졌다. 그야말로 자기 세상이었다.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깐이었다. 결국 그 둘째아들에 남는 것은 외로움과 가난과 실패감, 상처, 배신, 아픔, 고통, 좌절, 비관, 열등감이 남아 있었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오직 하나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가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길이었다. 그가 가졌던 모든 것, 재산, 명예, 자존감, 교만, 경력, 친구, 직업, 인기, 자랑, 쾌락, 방탕, 사치, 탐닉 같은 것들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전부, 모두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리는 항복만이 그가 살 유일한 길이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태복음5:3)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가난은 어느 정도의 가난이 아니라 총제적인 가난이다.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가난이다. 그러기에 신앙의 길은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사는 기독교인들의 삶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조금 다른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16:24)라고 하셨다. 신앙의 최고의 목표는 자기부인이다. 자기부인은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이다. 십자가는 의인이 죄인 되는 것이며, 왕이 종이 되는 것이며, 부요가 가난으로, 지혜가 어리석음으로, 생명이 죽음으로, 칭찬이 비난으로, 면류관이 채찍으로 돌아오는 삶이다.
남들이 성경 읽는 것처럼, 남들이 예배드리는 것처럼, 남들이 헌금하는 것처럼, 남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따라하는 신앙은 평범한 것이다.
신앙은 장식이 아니다. 신앙은 양식(糧食)이다. 신앙이 아니면 죽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 버려야 한다. 다 내려놓아야 한다. 조금이 아니라, 더 가 아니라, 다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김범수 목사 / 워싱턴 동산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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