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와 마음걸음이 빨라지던 어느 토요일, 주말이면 만나는 데보라와 파멜라씨가 집에 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돌아오는 시간이 훌쩍 지나고 주택가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 왔다. 무심코 땅을 바라보니 1센트짜리 동전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어머, 동전이 많이 떨어져 있네” 하면서 우리는 줍기 시작했다. 그저 한두개 실수로 흘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럭키 페니야. 그런데 이상하지? 누가 일부러 뿌린 것 같아”
우리는 의아해 하면서도 손바닥에 수북할 만큼 주웠다. 주위를 샅샅이 뒤져 한 개라도 남아있는가 확인도 했다.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남편과 나는 여느 일상처럼 산책을 나갔다가 그 지점까지 왔는데 세상에, 그 자리에 또 다시 동전이 흩뿌려져 있지 않는가. 몇 발자욱 앞서 가던 남편은 모르고 지나쳤는데 내 눈은 길 바닥에 낙엽 조각처럼 흩어진 구릿빛 동전을 보았다.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이것은 분명히 계획적인 것이다 하고 찜찜해 하면서도 못 본체 지나치지 못했다. 지난 토요일 만큼의 분량인데 집에 와서 어쩐지 불결한 생각이 들어서 내 지갑에 넣지 않고 화장품 가게에서 준 작은 천 지갑에 넣어 따로 두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똑 같은 장소에서 그 짓이 되풀이 되었다. 목요일에는 처음으로 개수를 세어보니 37개였다. 기가 막혔다.
새벽길을 걷다 보면 땅을 보고 걸을 때도 많아서 어쩌다 동전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본다. 예전에 나는 길에 떨어진 동전을 줍지 않았다. 1센트 하나를 놓고 돈 욕심이니 뭐니 논할 필요는 없지만 다만 가치도 없고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아서였다.
남편이 가다가 허리 굽혀 페니 하나를 주우면 속으로 비웃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가 줍기 전에 몰래 발로 툭 차서 멀리 버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1센트도 못 벌잖아?”
그 다음 부터는 1센트라도 소중히 여겨 눈에 띄면 주웠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치사하게 1센트짜리 동전을 가지고.
내가 쭈그리고 앉아서 동전을 따라다니며 집어 삼키는 모습을 그 사람이 자기 집 창가에서 보고 있지나 않을까, 어느 차 안에서 손뼉을 치며 키득거리고 있지나 않나 하면서도 악착같이 주웠다.
문득 영화 한편이 생각났다. 얼마 전에 아들 내외가 우리 생각을 해서 그런지 집에 와서 자겠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서 아이들이 빌려온 영화를 보았다.
‘소설보다 이상한’(Stranger than Fiction)이라는 제목인데, 주인공 역은 코미디 배우 윌 퍼렐(Will Ferrell)이 맡았다. IRS에서 일하는 해롤드라는 사나이의 이야기였다. 그는 실제인간이라기 보다 작가가 쓰는 각본대로 움직이는 소설속의 꼭두각시였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시계가 작동하는 대로 기계처럼 생활하면서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자기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자기는 작가가 만들어 낸 가공인물이며 각본대로 곧 죽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것을 막아보려고 수단 방법을 다 써서 작가를 추적해냈다. 그가 작가를 만났을 때 제발 자기를 죽이지 말라고 애걸복걸을 한다. 아주 재미있는 결론에까지 가는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동전을 줍고 있는 내 폼이 어쩐지 그 영화의 플롯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에 성빈이 엄마를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싱겁게 말했다.
“줍지 마세요. 그냥 내 버려두세요”
“그렇지? 내가 왜 말려 들어갔는지 몰라, 이렇게 간단한 걸 가지고”
다음날이 토요일이었다.
데보라와 파밀라씨가 일주일만에 왔다. 길을 가면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너무 이상하다고 하면서 데보라가 하는 말,
“다음 토요일에 우리 그 동안 주운 동전을 가지고 와서 여기다 확 뿌려요. 안 쓰고 다 그대로 가지고 있지요?
“그럼”
우리는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너 맛 좀 봐라 하고 별렀다.
그 자리에 왔을 때 또 뿌려져 있는 동전을 못 본체하고 지나쳤다.
“꼭 오는 토요일에는 복수를 해야지”
그러나 건망증 많은 우리는 그 주간에 한 명은 한국에 나가고 한 명은 여행을 가기로 돼있다는 것을 잊었다. 나는 두 주간 동안 그대로 버려져 있는 동전을 줍지 않았다.
놀랐던 것은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지나쳤을텐데 동전이 꼼짝없이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결국 나 밖에 줍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세어보니 13개였다. 늘 13개였다. 또 두 주가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느 날 그 동전을 다 주웠다. 주운 목적은 다음날에 또 뿌려져 있으면 그 동안 내가 모아둔 동전을 다 갖다 던져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동전 1개도 발견하지 못했다.
누가 만든 해프닝인지 나는 스스로 그 사람의 생각대로 놀아났고 반전의 기회도 주지 않고 끝이 났다. 올챙이배처럼 목이 잠가 지지 않을 만큼 꽉 찬 동전 주머니가 미련하게 보인다. 마지막 것만이라도 줍지 않을걸, 완전 K.O 패였다. 떼돈을 번 것도 아니었다. 전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1불이나 2불정도 될 것 같다.
며느리한테 이 말을 했더니 깔깔거리며 재미있어 하드니
“그럼 그 페니 담은 주머니 하고 그 동전 사진 찍어 놓으세요”한다.
“그럴까, 그 다음에 어떻게 하지?”
김신숙
1991년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등단. 2007년도 서울 문학 수필 등단. 미주크리스찬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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