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화요일’이 언제였더라. 2월5일이니까, 불과 한 달여 전이다. 그런데 아주 오래 전 같다. 전망이 참 어렵다, 예측을 불허케 하는 대선 레이스다. 해서 그런 느낌인가.
온통 변수 투성이다. 민주당 내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화당은 일찌감치 존 매케인을 대선후보로 확정했다. 변수라면 큰 변수다. 거기다가 이라크 전쟁이 있다. 또 후퇴 기미의 미국 경제는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2008년 미국 대선 레이스 전망은 그래서 더 힘들다.
올 대선의 최대변수는 그렇지만 버락 오바마다. 아니, 상수라고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수퍼화요일 이후 민주당 후보 지명전에서 12연승을 거두었다. 그 결과 ‘오바마 대세론’이 굳어질 판이었으니까.
그 오바마 변수가 또 한 차례 변곡점을 향해 가고 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누가 한 말인가.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미니 수퍼화요일 이후의 일이다. 주춤거리는 가운데 오바마는 추락 기미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르는 것은 어떤 것이든 떨어지게 돼 있다. 오바마란 풍선은 그러나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고 있다. 그 상승세는 그러면 11월까지 계속될 것인가.” 무서울 정도의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 왔다. 그 오바마 현상과 관련해 나온 말이다.
화려한 수사는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로 불린 레이건을 능가한다. 그리고 어딘가 신화가 된 케네디를 닮았다. 그 언어의 파워를 무기로 세몰이에 나선 오바마의 인기는 계속 상종가를 쳤다. 최근 대선 레이스 사상 최장기록을 세운 것이다.
“오르는 것은… 그러나 결국 떨어진다.” 이제 와서 말이 달라지고 있다. 누구든 중력의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반증하기라도 하듯이.
무엇이 오바마의 추락을 가져 오고 있나. 다름 아닌 그의 화려한 언어다.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오바마의 비상을 보장해 준 날개는 그의 바로 그의 언어능력이기 때문이다.
그 수사가 상당히 현란하다. 거기다가 교묘하다. 모든 것을 극복한 것처럼 들려서다. 인종의 벽도, 계급도, 당색도 초월한 것 같다. 철저히 ‘we 메시지’를 구사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변화의 주역이 되기를 초청한다. 그 한 가운데에는 물론 오바마가 있고….
“…그렇지만 실체가 없지 않은가.” 그 언어의 마력에 빠져 들었었다. 그러나 되풀이되는 미사여구에서 무언가 허구가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이 먼저 그 허구성을 공격하고 나섰다. ‘펀딧’(pundit)으로 통칭되는 논평가들도 파고들었다.
말뿐이지 실체가 없다. 오바마 언어는 미망에 불과하다. 워싱턴포스트의 로버트 새뮤얼슨의 지적이다. 내용보다 말하는 스타일에 사람들이 현혹되고 있다는 것이다. 타임의 조 클라인의 지적은 더 신랄하다.
오바마 언어의 마술에 결려든 사람은 그를 마치 메시아처럼 열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보내는 메시지는 위험할 정도로 ‘자기 지시적’이라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빗 브룩스도 같은 견해다. 오바마 지지자들은 거리에 나가 꽃을 팔고, 집단으로 합동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다고 쓴 것이다. 마치 교주를 대하듯 한다는 얘기다.
오바마 추락을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단서가 있다. 장차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될지도 모를 ‘미시즈 오바마’가 내비친 ‘속마음의 언어’다. 오바마의 상승세와 관련해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미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는 발언을 한 것이다.
언어가 가져다주는 미묘한 뉘앙스들이 보통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그 사소해 보이는 마음의 움직임들이 ‘오바마란 풍선의 바람을 빼고 있지 않은가’ 하는 분석이다. 그 시작이 오바마의 연승에 제동이 걸린 미니 수퍼화요일이란 지적과 함께.
화려한 수사는 그가 제시한 해외 정책에도 불신을 불러오고 있다. 대통령이 되면 북한의 김정일, 이란의 아흐메디네자드 등을 아무 조건 없이 만나겠다는 것이 그의 공약이다. 말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다.
지구촌 최악의 독재자들이다. 그들을 말로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자신의 언어 능력을 과신한 데서 온 것으로, 차가운 국제정치 현실에 대한 인식 부족이라는 비난이다.
사슴을 닮았다. 착해 보이는 눈동자, 사람을 끌어들이는 화술에 매너,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해 주는 듯한 그의 삶. 그 오바마에 미국이 열광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미스터리의 인물이다. 그 오바마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그는 그 압력에 폭발하면서 식어버리는 초신성 ‘수퍼노바’가 될까, 아니면 미국의 역사를 새롭게 쓸 것인가. 중반전으로 들어선 미 대선 레이스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옥 세 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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