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가 다시 살아났다. 지난 1월초 뉴햄프셔에서, 2월초 캘리포니아에서, 그리고 3월4일 오하이오와 텍사스에서, 이렇게 그는 매달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되살아났다. 이날 밤 오하이오 승리축하장으로 날아가는 힐러리 캠페인 전용기에 동승했던 한 취재기자는 장례식인 줄 알고 왔는데 부활잔치냐고 참모들에게 조크를 던졌다.
이번엔 무엇이 힐러리를 다시 살려냈을까.
현장 취재기자들은 이미 한 주전부터, 특히 지난 주말을 지나면서는 확연하게 ‘승리’를 예감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우선 선거캠프의 분위기가 달랐다. 필사적으로 전력투구하면서도 피로가 아닌 활기가 넘쳤고, 불황에 고통 받는 유권자와 공감하며 잘 살 수있게 대신 싸워주겠다고 약속한 힐러리는 목이 꽉 잠기는 강행군을 마다하지 않았다.
힐러리 진영의 선거전략도 오랜만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온 양면전략을 동원했다. 언더독이라는 약자의 입장에서 유권자의 동정표를 모았고 오바마의 약점을 찌르는 네거티브 광고로 맹공격을 가했다.
미 대선 사상 가장 강력했던 공격성 광고는 1964년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위험한 전쟁광으로 낙인찍은 ‘데이지 광고’였다. ‘사랑스런 어린 소녀가 초원에서 데이지 꽃잎을 뜯으며 하나 둘 세는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지다가 갑자기 미사일 발사의 카운트다운을 하는 거친 남자 목소리가 소녀의 목소리를 덮치며 핵폭탄의 버섯구름이 스크린을 점령한다…’ 이 광고는 단 한번 방영으로 당시 민주당 린든 존슨 압승의 견인차가 되었다.
선거전의 광고는 비난이 따른다 해도 네거티브라야 훨씬 효과적이다. 오바마의 국가안보경험 부족을 꼬집은 이번 힐러리측의 ‘새벽3시 전화’광고도 그랬다. ‘어린 자녀들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3시 세계적 변고를 알리는 백악관의 전화가 울릴 때 누가 받기를 원하는가, 경험과 대처능력 있는 대통령을 원하는가…당신의 투표가 결정할 것이다’
‘오바마만 편애하는’ 미디어의 부당대우를 지적한 힐러리의 불평도 결국은 성과가 있었다. 그후 오바마에 대한 언론의 공격성 질문이 늘어났고 타이밍마저 힐러리 편에 선 듯 오바마 관련 악재가 계속 터졌다. 나프타공약에 대해 캐나다 정부가 불평하자 ‘선거용’이라고 해명했다는 이중적 처사나 큰손 지지자의 사기횡령 혐의등에 대한 논란이 잇달으면서 오바마는 지난 한주 내내 방어적 수세에 몰려야 했다.
결과는 또 한번의 ‘컴백 키드 힐러리’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난 뉴햄프셔의 컴백과는 다르다. 못 미친다. 승기를 잡은 것이 아니라 아직은 오바마의 승기를 잠시 멈추게 한 정도다. 지난 두달간 오바마에게 잠식당했던 자신의 지지기반을 되찾은 것뿐이다. 이번에 벼랑 끝에 선 힐러리를 다시 끌어올린 유권자의 힘은 네가지다 - 우먼파워, 시니어파워, 라티노파워, 그리고 학력낮고 소득낮은 리틀피플파워. 오하이오에서 힐러리에게로 몰린 백인남성표가 ‘백인’표인지, 경제를 걱정하는 ‘저소득층’ 표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힘들다.
이처럼 자신의 종래기반을 되찾았을 뿐 힐러리의 4일 승리는 젊은 층과 흑인 등 오바마의 표밭은 거의 건드리지 못했다. 오바마의 대의원수 우세에도 별 흠집을 내지 못했다. 오바마는 여전히 선두주자다.
오하이오 승리 축하장은 마치 전당대회 마지막 날을 방불케 했다. 오랜만에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힐러리는 외쳤다. “우린 계속 갈 것입니다. 강하게 갈 것입니다. 끝까지 갈 것입니다” 오색종이가 꽃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환호하는 지지자들의 열기는 오바마의 랠리를 무색케 했다. 얼마후 샌 안토니오에서 스피치를 한 오바마는 상대적으로 ‘맥빠진’ 지지자들에게 일깨워주듯 말했다. “오늘 아침이나 지금이나 대의원수 차이엔 변한 게 없습니다”
바람을 타고 올라 선 오바마는 계산된 숫자의 우세를 강조하고 있는데 숫자계산으로 승리를 자만했다 무너졌던 힐러리는 이제야 바람을 타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여개주를 남긴 경선은 종반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말 와이오밍과 미시시피는 오바마 우세지역이지만 4월의 펜실베니아는 힐러리 우세이며 5월에 들어서도 노스캐롤라이나는 오바마, 인디애나는 힐러리…식으로 표심이 갈리고 있으니 대의원 숫자 우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선출대의원 숫자로는 힐러리의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힐러리의 후보지명 승산은 전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수퍼대의원에 기대를 걸 수 있다. 접전이 계속되는한 지지의사를 밝히지 않은 수퍼대의원들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승리로 시간을 번 힐러리가 할 일은 우선 오바마와의 대의원수 격차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수퍼대의원들이 ‘민의’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소신대로 표를 던질수 있는 격차는 어느 선일까. 아직 전례가 없어 아무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100명 미만으로 꼽는 게 보통이다.
힐러리의 병기는 하나 더 있다. ‘포섭대상’ 수퍼대의원은 350명가량이다. 맨투맨이 유효할 것이다. 민주당내에서 권위와 설득력과 호감도를 두루 갖춘 최고의 포섭 담당자가 누구이겠는가. 빌 클린턴이 힐러리 대권도전에 자산인가, 부담인가는 수퍼대의원 확보작전에서 또 한번 판가름이 날 수 있을 듯하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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