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트랙의 황제, 김동성의 새로운 도전
‘괴물’ ‘황제’...어찌 보면 그를 지칭하는 최상급 표현으로도 그의 전성기를 수식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경이로운 지구력과 최강의 스퍼트 능력으로 숏트랙 스케이팅 역사상 유일하게 전관왕(6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주인공. 500m, 1000m, 1500m, 3000m, 5000m 계주 등 모든 종목의 세계 랭킹 1위였던 그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선수였다. 무엇보다 그는 안토 오노와의 얄궂은 화제를 통해 더 기억된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 오노 선수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기는 비운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는 국민적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랐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보다 더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무릎 부상은 그를 현역에서 밀어냈고 높은 인기와 준수한 외모는 연예계의 러브콜을 이어지게 했다. 방송 해설가 등 외도를 잠시 하던 그는 숱한 지상의 별들처럼 세인의 관심사에서 점차 사라졌다 어느 날 홀연히 태평양을 건넜다. 김동성(27.사진). 세계 최강의 선수에서 이젠 메릴랜드의 한 작은 스포츠클럽에서 이름 없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그를 만나 새로운 삶과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언제 미국에 왔나
2006년 1월 애리조나로 처음 왔다가 작년 6월에 위튼 클럽에서 코치 제의를 해 다시 메릴랜드에 오게 됐다. 당시 애리조나 한인회에서 스폰서를 해주겠다고 해 망설였는데 위튼 클럽에서 “선수들은 있는데 코치가 없다”고 해 마음이 쏠렸다.
-유명 스타 출신인데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고 왜 미국에 왔나
2002년 오노 판정 이후 운동을 그만 뒀다. 한국서 스폿 라이트를 많이 받았다. 그런 관심이 불편하기도 했다. 2004년 결혼하고 장래를 생각하다 한국에서는 코치가 인정을 못 받으니 국제 심판 자격증을 따고 싶었다. 영어 공부를 위해 오게 된 것이다.
-심판에서 지도자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 뭔가
미국에 와서 보니 심판은 나이 들어도 할 수 있지만 후진 양성은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코치로 성공하기 위해 꿈을 보류했다.
-처음 시작한 지도자 생활은 어떤가
선수 때는 그냥 쫓아가면 되는 입장이었다. 마음이 편했는데 현재는 클럽을 이끄는 위치라 부담스럽다.
-숏트랙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나 관심이 한국보다 많이 떨어질텐데
안톤 오노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미국에서도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선수도 증가하고 실력도 좋아지고 있다. 사실 2000년 이전에 미국 팀은 국제시합에 나오면 대부분 예선 탈락이었다. 한국에서 보면 우스운 존재였다. 지금 미국의 숏트랙 코치의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과학적이고 집중적인 지도를 하고 있어 크게 나아질 것이다. 다만 한국과 달리 부모님들의 지원이 꾸준하지 않다. 고등학생 정도가 되면 공부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미국에 와서 ‘숙적’ 오노는 만났나
한국에서 해설을 하며 오노 선수를 만난 적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못 만났다. 3월초 내셔널 대회에 오노가 출전할 예정이었는데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와 맞물려 불참하게 됐다. 내가 코치로 있는 한 시합장에서 언젠가 만날 것이다.
-어디서 가르치나
메릴랜드 위튼 클럽과 훼어팩스 아이스 아레나에서 학생당 주 2-5회 가르치고 있다. 한국보다 시설이 좋지 않고 사용료도 비싼 편이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15명가량 됐는데 지금은 한 50명이 배우고 있다. 다섯 살 꼬마에서부터 60대 할아버지까지 연령은 다양하며 한인 학생이 70%가량 된다.
-한인 학생들이 숏트랙에 몰리는 이유는 뭔가
한국에서는 1등이 힘들다. 한국서 1등이면 세계에서 1등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입상이 쉽다. 메달 취득이 쉬워 대학 진학시 도움이 된다. 똑같은 조건에서 배우면 한인 학생들이 미국 아이들보다 빨리 배운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힘에서 딸리는 것 같다.
-김동성 식 지도방식은 어떤 건가
내가 가르친 후 선수들의 한국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선 미국 학생들도 나를 한국말로 ‘선생님’이라 부른다. 운동량도 많아지는 등 한국식으로 지도한다. 난 18년간 운동하며 한 달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운동은 많이 안하면서 올림픽을 꿈꾸는 것은 안 된다. 또 아이들에 기술 이외에 인성 교육도 하고 있다. 어른을 만나면 머리 숙여 인사하게 한다. 스케이트만 잘 타는 게 전부가 아니다. 나한테 배웠다면 적어도 예의 바르고 성격 좋다는 말을 듣고 싶다. 만약 성적이 나빠졌거나 숙제를 안했으면 스케이트를 못 타게 한다.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지난 영화가 그립지 않나
그런 거 없다. 미국생활은 사실 나보다 아내가 더 좋아한다. 영주권도 이미 받았다. 좋은 선수를 배출하는 것, 이젠 선수가 내 얼굴이다. 미국 대표팀에서 오노 선수를 뛰어 넘는 선수가 나오면 내 존재는 다시 인정받는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농사지을 때의 씨 뿌리는 과정에 있다. 3-4년 농사를 지어야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그것을 보고 있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제자 중에 줄리앙이라고 있다. 미국에서 16명 안에도 들지 않던 그 아이가 이젠 8위로 뛰어 올랐다. 나는 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만일 한국에서 좋은 조건으로 오라고 하면
위튼 클럽 학생들은 아직도 불안해한다. 내가 떠날까봐서다. 그동안 1년에 6차례나 코치가 바뀌었다. 설사 좋은 조건의 귀국 제의가 있어도 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 대표팀 코치 제의를 해와도 난 위튼 코치로 그냥 있을 것이다. 걸음마 수준의 선수들을 놓아두는 무책임함이 싫다. 아이들 가르치는 게 이젠 내 힘이다.
-지도자 김동성의 꿈은 뭔가
만 6살에 스케이트 화를 신어 18년간 한 우물만 팠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선수로서는 금메달도 따고 최고였지만 코치로서도 최고가 되고 싶다. 내가 만든 미국 대표, 올림픽 메달리스트, 그걸 바라보고 싶다.
문의 443-670-7951.
<이종국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