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신문사에 잘 아는 지인들과 뜻있는 독자들로부터 항의전화가 계속 잇따르고 있다. 한국의 공직자인 검사 팀에서 재미한인을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라고 호칭한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1일 BBK 의혹을 수사하던 정호영 특검팀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김경준씨를 지칭, “한마디로 검은머리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이 우롱당한 사건”이라고 한 발언은 도가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일종의 망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동화책에 ‘빨강머리 앤’이라는 제목은 있지만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다. 그것도 백인이 우리 한인들을 두고 비하하는 말이 아니고 한국의 현직 검사가 재미한인을 싸잡아서 하는 말이니 참으로 기가 막히다. 도대체 미주지역의 한인들을 어떻게 보았
길 래 나라의 법을 심판하는 법관이 그런 말을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공직자인 검사가 그런 막말을 해도 되는가?
재외 동포법은 재외동포 범위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국외로 이주한 자 중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자와 그 직계 비속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자 중 외국국적 취득이전에 대한민국 국적을 명시적으로 확인받은 자와 그 직계비속’으로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두 번째 요건에 있다. 지난 국회에서도 부결됐지만 해방이후에 태어난 중국, 러시아 등 동포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일각에서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현실이다.
예의 김경준씨는 현행 법률상으로도 명백히 ‘재외동포’에 해당되지 ‘검은 머리의 외국인’이 아니다. 재외동포들이 이중국적을 요구하고 있는 이즈음 특별검사로 임명된 검사가 그런 법규를 모를 리가 있을까? 그럼에도 국내외 모든 한국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장 예민한 사건의 결과를 발표하는데 왜 그런 발언을 서슴지 않고 했는지 그 의도를 모르겠다.
그동안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한국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마음과 정성을 모아 모국을 도왔었다. 가뭄이나 홍수, 화재 같은 불상사가 생겼을 때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무조건 도왔다. 지난 IMF사건 때만 해도 온 해외 한인들이 고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현금이고 금반지고 쌈짓돈까지 가리지 않고 털어 한국에 보냈다.
어느 한인여성은 남편이 프로포즈할 때 “한국에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고 떠보기 위해서 질문했더니 “조국을 위해 즉시 자원입대 하겠다”고 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무리 우리가 해외에 나와 살고 있더라도 정신과 마음은 한국의 한 국민임을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피를 나눈 한인을 보고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니... 이것은 높은 사람에게만 잘 보이고 해외동포는 마음대로 우롱해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는 BBK사건의 본질은 잘 모른다. 다만 이 사건은 ‘김경준’이라는 한 한국계 미국인이 연루돼서 벌어진 사건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에게 있는 것이지 미주한인 전체가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특검팀은 왜 미주 한인 전체를 싸잡아 매도하고 드는가! 그동안도 한국에서는 해외한인들의 진정어린 고국사랑과 애국심과는 달리 이따금 한인들을 우습게 생각하고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문제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외국에 나와 열심히 살아가는 한인들을 보고 ‘남의 더러운 속옷이나 빠는 교포들’ 아니면 ‘똥포’ 또는 ‘바나나’라고 하는 둥, 한인들의 이미지나 위상을 실추시키는 발언을 일삼아 재미한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이곳의 실상을 잘 모르다 보니 그런 것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들의
잘못된 생각이나 한심스런 발언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어가 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 특검팀
의 실언은 사정이 다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인이 아니라 나라의 책임 있는 공직자의 입에
서 그런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했다는 것은 200만 재미한인 모두
를 우습게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지금은 한국계 미국인 2세들도 한국에 많이 가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 경제 및 교육 분야에 뛰
어들어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그런 시점에 왜 그런 망언을 해 한인 2세들의 용기를 상실시키
고 한국에 대해 실망감을 갖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번 발언에 대해 특검보는 책임 있는 사과와
해명을 분명히 해야 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