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적 보수주의’라는 말이 기억나는가. 7년 전, 그러니까 2001년 부시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의 기조내용이다. 국내 아젠다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사회적 약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 보수정책을 펼 것이라는 다짐이었다.
‘온정적 보수주의’란 말은 그러나 1년도 못 가 잘 안 보이게 됐다. 대신 등장한 말이 ‘악의 축’이다. 그리고 뒤따른 게 이라크 전쟁이다. 훗날 부시의 평가도 이 앵글에서 이루어 질것 같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업적은 ‘전시 지도자’란 관점에서 주로 평가된다는 거다.
9.11사태가 가져온 결과다. 예기치 못한 테러전쟁이 부시의 정책순위를 바꾼 것이다.
부시의 ‘불발 온정적 보수주의’를 끄집어 낸 건 다름 아니다. ‘경제 대통령’으로 기대가 높다. 경제회복이라는 국민적 열망에 힘입어 당선됐다. 그 이명박 대통령 취임했으니까. 이명박 정부가 맞게 되는 주 도전은 그런데 안보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어서다.
“이번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근대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다. 이번 선거는 단순히 한국의 경제나 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12.19 한국 대선을 앞두고 미 국제전략 연구소의 그레고리 코플러 소장이 던진 전망이다.
12.19 대선의 의미를 한국의 생존, 장래 운명과 관련해서까지 분석 했던 것이다. 무엇이 이런 전망을 불러왔나.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새 시대를 맞고 있다는 진단에서다.
표면의 흐름은 완만해 보인다. 그러나 그 밑의 흐름은 여간 빠른 게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흐름을 또 다른 관측통은 이렇게 설명한다. “저마다 평화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무제한에 가까운 군비경쟁이다.”
군비경쟁이 충동국면으로 이어질지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 세기 전 형성된 동북아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하고 있다. 그 ‘스테이터스 쿠오’가 무너지면서 동북아 국가들은 암암리에 저마다 전략적 입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군비경쟁이 가속화 되는 형식으로.
관련해 특히 주목되고 있는 것은 김정일 체제의 운명이다. ‘김정일 이후의 북한’의 향배는 기존 동북아 질서의 폭발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개혁·개방에 나설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수년을 끌어온 6자회담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 가면서 형성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컨센서스다. 이유는 자명하다.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개혁·개방은 김정일 체제붕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김정일 체제의 입장에는 이처럼 변화가 없다. 그런데 중국을 포함한 나머지 6자 회담 참가 국가들의 하나같은 주문은 개혁·개방이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그래서 대두되는 게 중국 개입 시나리오로, 그 윤곽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김정일 제거 쿠데타도 가능하다. 유사시 중국은 유엔군의 이름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아니, 유엔의 승인도 필요 없다….” 6자 회담 무용론이 확산되면서 나오고 있는 말들이다. 워싱턴 일각에서는 이런 얘기가 나돌 정도다. “미국과 일본, 한국의 전쟁 계획자들은 김정일 체제 붕괴 시 중국의 일방적 개입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6자회담이 좌초하면 그 다음 오는 것은 압박모드다. 그 압박을 북한은 견뎌낼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비정상이다. 김정일 체제의 북한 말이다. 압박모드가 강화될 때 그 체제는 곧 한계점에 이를 수 있다. 그 타이밍이 임박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여기서 새삼 주목되는 게 이명박 정부의 대응책이다. 그 방법론은 이미 나와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함으로써 안보 인프라를 두터이 하는 것이다.
중국은 경제대국에 이어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일본도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동북아의 안보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중국의 북한개입사태가 발생한다. 굳건한 한미동맹만이 그 격랑을 막아낼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 가지가 또 있다. 확고한 인권정책이다. 북한 문제는 근본에 있어 인권문제다. 어찌 보면 핵은 부차적인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경제는 항상 가변적이다. 나빠졌다가 좋아질 수도 있다. 안보와, 그 안보를 담보로 한 외교는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 일수 있다. 국제질서의 전환기, 안보환경의 변환기의 한국으로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구한말에서 6.25에 이르는 과거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대통령’만 되어서는 안 된다. ‘외교 대통령’에, ‘인권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전환기의 한반도 상황이 그런 지도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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