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대학원 졸업 후 친척 댁에 가서 앞으로의 진로에 관해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남는다. “대학원 졸업하면 연봉이 얼마나 올라가지?” “내려갈 지도 모르는데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러면 대학원에 비싼 학비 내 가면서 왜 갔니?” 친척 어른의 말씀은 줄어드는 연봉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내 앞날을 걱정하는 진지한 질문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렇듯이 한인사회에서도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정부의 자리나 정치가 아니면 그리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 안 되고 부모 입장에서 자식을 위해 바라는 미래도 아니다. 6.25전쟁 이후에 뼈아픈 가난과 어려움을 겪은 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미국에 처음 이민 온 후로 많은 한인 1세들은 휴가 하루도 못 내고 꼭두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내겠다는 일념으로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과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대부분의 한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명문대학을 졸업해서 월가의 투자 은행 혹은 대형 법률사무소에서 일하거나 아니면 의사 같은 다른 전문직에 종사하길 원할 것이다. 하버드나 프린스턴대학을 나와서 연봉 5만달러가 안 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겠다고 하면 부모는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한국사회도 그렇고 미주 한인사회도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정착된 공익에 관한 우리 태도도 달라져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공익단체에 돈을 기부하는 수준을 넘어서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물론 주류사회에서도 아직은 비영리단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존재한다. 미국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된 나라인 만큼 이윤추구 자체를 비하해서도 안 된다.
한인 2세인 찰스 송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인신매매 피해자들에게 법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일을 하는 이른바 ‘비영리 변호사’로 최근까지 일해 왔다. 그의 부모님은 로스쿨을 나와서 바로 인권문제를 다뤄온 아들의 선택을 존중해 줬다고 한다. 하지만 송 변호사의 친척들은 여전히 그가 하는 일을 납득하지 못 한다고 한다. “돈을 받지 않고 해주는 법률상담도 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 한다는 것이다. 송 변호사는 이런 반응들을 이렇게 받아 넘긴다. “가난한 변호사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이겠죠.”
송씨는 법률잡지 ‘캘리포니아 로이어’에 의해 2004년도 최고의 인권 변호사로 뽑힌 바 있다. 그는 기존의 일을 좋아했지만 최근에 법률사무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아직도 로펌에서 공익을 위한 법적인 케이스를 다루고 다른 변호사들도 공익에 봉사할 수 있게끔 이끄는 독특한 역할을 한다. 비슷한 일은 하는 조앤 리 변호사도 이런 반응에 익숙하다. 그의 친척들도 “언제 진짜로 취직할거니?”라고 항상 물어본다는 것이다.
물론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데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일단 어느 정도의 검소한 생활을 감수해야 한다. 또한 남자라면 부모님 혹은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여자는 많은 경우 ‘가장’이 아니기 때문에 가족에게 큰 피해를 안 주고 돈 안 받고 좋은 일은 하는 일명 ‘천사’라는 인정을 받기도 하지만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이런 눈총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주류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한인사회에서는 도가 지나치다.
한인사회내의 공익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려면 가까운 우리의 가족과 가정이 먼저 변해야 한다. 비영리사업을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민정신은 자본주의 사회의 성숙함을 가늠하게 하는 지표이고, 가정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기회가 닿는다면 예전의 친척 어른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학원 졸업 후 인신매매 피해자를 도운 일은 월급은 적었지만 그것을 통해 어떤 기업이나 정치관련 일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뜻 깊은 보람을 느꼈습니다”라고. 나는 이러한 경험이 앞으로 더욱 더 큰 일을 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며 이런 일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올수록 공익은 더 확실하게 지켜 질수 있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남주
캘리포니아 커뮤니티재단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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