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가 존 매케인이라는 이름과 친숙해진 것은 2006년 연방상원에서 추진된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통해서였다. 결국 반대파에 밀려 무산되기는 했지만 당시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의원과 이민개혁안을 공동제안했던 공화당 상원의원 매케인은 한인을 포함한 많은 이민자들에겐 친근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매케인이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었다. 앞으로 확보해야할 대의원 숫자도 400명이 채 안 남았다. 지난주 수퍼 화요일에 대세가 거의 드러난 공화당 경선은 이번주 포토맥 예선을 치르면서 완전히 마무리된 셈이다.
이번 대선 출마를 결정하기 전 매케인과 부인 신디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16세짜리 딸 브리짓이었다.
2000년 대선 공화당 경선 중 부시와 맞붙었던 매케인은 혼외정사에서 정신불안, 동성애, 아내의 마약중독에 이르기까지 온갖 끔찍한 흑색선전에 시달렸었다. “만약 매케인이 바람피워서 흑인아이를 낳았다는 걸 알아도 그를 찍을 겁니까?” - 당시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공화당 유권자들에게 쇄도한 이른바 ‘여론조사’ 전화문의였다. 매케인의 7남매 중 막내로 뱅글라데시에서 입양한, 검은 피부의 브리짓을 비방전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었다.
부시진영은 ‘우린 절대 모르는 일’이라고 지금까지 부인하고 있으니 혐의는 천상 극우보수파들에게 둘 수밖에 없다. 매케인은 그때부터도 보수주의자들에겐 ‘우리 중 하나’가 아니었다. 참기 힘든 눈에 가시였다.
하긴 자랄 때도 고분고분한 학생이 아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해군제독이었던 가업에 따라 해사에 입학했던 매케인은 ‘터프가이’란 별명에 걸맞게 적지않은 문제를 일으켜 거의 퇴학을 당할 뻔하다가 꼴찌에서 5위로 졸업했다. 베트남전 부상(전투기 폭격으로 양팔과 한쪽다리가 골절되고 포로시절 고문으로 어깨와 갈비뼈를 상한 그는 지금도 양팔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으로 제독의 꿈을 포기한 그는 연방의회 연락장교로 근무하면서 정치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애리조나주 연방하원으로 출발해 현재 4선 연방상원의원이다.
외모로만 본다면, 흑인후보, 여성후보에 비해 너무 평범한 ‘또 하나 백인남성’ 후보에 불과하지만 기질로 본다면 매케인도 오바마나 힐러리 못지않게 ‘독특한, 그리고 만만찮은’ 인물이다.
극우 보수파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케인에 대한 그들의 불만도 한편 이해는 간다. 그가 보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공화당의 기수라고 하기에는 솔직히 너무나 ‘민주당적’으로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에 대한 한결같은 지지와 연방지출 규제 정도를 제외하곤 공화당의 방향과는 계속 엇나가왔다.
그에겐 별칭도 많다. 보수진영이 결사반대하는 불법체류자 ‘사면’을 담은 이민개혁안을 제안했다하여 ‘후안 매케인’이라고 불리는가 하면 매케인-케네디 이민개혁안을 비롯, 정치자금 규제법인 매케인-파인골드 법안, 환경보호를 위한 매케인-리버맨 법안 등 공화당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온갖 진보정책을 민주당과 손잡고 앞장섰다하여 무늬만 공화당인 ‘벽장 속의 민주당’으로도 불린다(몇년전엔 민주당 일각에서 실제로 그의 영입을 추진하기도 했었다)
스스로 매브릭(이단아)으로 자처하며 이념 아닌, 자신의 소신에 따라 결정해온 매케인의 의정기록은 그에겐 약점이자 강점이다. 보수이념의 적자가 아니라고 극우진영 공격의 대상인 그의 초당적 중도성향이 바로 무소속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힘이기 때문이다. 본선의 경쟁력을 생각하면 무소속 유권자에 계속 어필해야 하지만 핵심 보수파들을 무시하기엔 그들이 움켜쥐고 있는 돈과 표가 너무나 많다. 양쪽을 다 만족시킬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한 성질 하는 매케인에겐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균형이 필요한 것은 부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후보가 누가되든 본선에서 매케인을 물리칠 가장 효과적 무기는 ‘조지 부시’다. 그런데 이라크전과 이민정책이라는 주요이슈로 보자면 매케인은 가장 충실한 부시의 후계자다. 또 당내 단합을 위해선 아직은 부시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 ‘불가근 불가원’으로 신중하게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입장이니 선거 가까이쯤 부시가 해외순방이라고 떠나준다면…고마울 것이다.
민주당의 기세에 눌려 체념했던 공화당은 요즘 71세의 이단아, 매케인의 ‘화려한 비상’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승산이 없지 않은 것이다. 특히 민주당 후보가 힐러리라면 호감도에서부터 월등한 차이로 매케인이 앞서가며 우세를 예언해준다. 오바마가 후보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월스트릿저널의 표현대로 이제 오바마는 돌풍을 넘어 ‘대중문화처럼 현상‘이 되었으며 힐러리를 누르고 이긴다면 ‘하나의 전설’로 굳어질 것이고 전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기란 너무 힘들테니까.
한 공화당 리더가 매케인은 11월 승리를 위해 ‘이라크상황이 호전되기를’ ‘경기침체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충고했는데 한가지 더 보태야 할 것 같다 - ‘힐러리가 승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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