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 후보 지지자입니다(I am bi-candidate)”
코미디언 마거릿 조가 며칠 전 한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선언’을 했다. 오바마도 좋고 힐러리도 좋아서 선택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희망과 변화의 상징으로, 정치라면 환멸을 느끼던 젊은 세대를 열광적 팬으로 뒤바꿔 놓은 놀라운 버락 오바마, 그런가 하면 탁월한 지도자로 이미 검증이 다 끝난 경탄의 대상 힐러리 클린턴 - 훌륭한 후보를 둘씩이나 놓고 고르는 즐거움, 그러나 어느 한쪽을 선택하자니 다른 한쪽이 아까워서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그는 특유의 유머감각을 곁들여 썼다.
결국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길은 오바마와 클린턴이 한 팀이 되는 것뿐이니 하느님, 제발 그렇게 되게 해주세요”라고 그는 글을 끝맺었다.
민주당 유권자라면 누구나 해봤을, 혹은 하고 있을 고민이다. 민주당 경선이 바로 다음 날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가열되면서 한인사회에서도 선거가 핫이슈이다. 이제 ‘힐러리냐 오바마냐’라는 이슈는 언제 어떤 모임에서든 좌중에 활기를 불어넣는 인기 주제가 되었다.
미국 정치가 한인들 사이에서 이렇게 열띤 토론을 끌어내는 것은 정말이지 드문 일이다. 흑인에 대한 편견, 똑똑하고 강한 여성에 대한 거부감, 클린턴·부시 가문의 장기집권에 대한 반감 … 누구나 입장이 있고, 한마디씩 하고 싶은 문제들을 이번 민주당 경선이 폭넓게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선배 중에 한바탕 시끄럽게 결혼을 한 케이스가 있었다. 우리가 20대였던 1970년대 그는 일류 회사 대리쯤 되는, 나이가 좀 위인 결혼 상대가 있었다. 맞선 봐서 양쪽 집안 합의하에 결혼을 약속한, 조건 나무랄 데 없는 청년이었다. 이변이 없는 한 그와 결혼을 할 것이고, 결혼을 하면 일정 수준의 유복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군대 갔던 대학 동창이 제대를 하고 나타나서는 열정적으로 구애를 하는 것이었다. 전자가 조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면서 정이 든 케이스라면 후자는 가슴 터질 듯한 뜨거운 사랑이었다. 그 선배가 일등 신랑감을 버리고 직장도 없는 동갑내기 청년에게 가려하자 집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선배는 가출 소동까지 벌인 후 결국 사랑하는 청년과 결혼을 했다.
힐러리와 오바마의 접전을 보면서 수십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두 후보를 놓고 유권자들이 하는 고민이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머리로 따져보면 힐러리만큼 ‘준비된 대통령’이 없는 데 오바마가 가슴 가슴마다 지피는 희망의 불길이 너무 강렬해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힐러리와 오바마의 가장 큰 차이는 접근법이라고 본다. 뼛속까지 ‘진보’인 두 후보는 정책면에서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경험과 능력 면에서 탁월한 힐러리를 제치고 오바마라는 애송이 후보에 대한 지지가 뜨거운 데는 이유가 있다.
힐러리가 유권자들의 이성에 호소하는 데 반해 오바마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차이라고 본다. 힐러리는 자신의 업적·장점을 조목조목 나열하며 유권자들의 머리로 다가가고, 오바마는 무지개 같은 비전을 내세우며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가슴을 건드린다. 힐러리가 잘 쓰여진 에세이라면 오바마는 감동을 주는 한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취임 첫날부터 공화당의 공세에 맞서 싸우며 이 나라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수십년 그들과의 싸움으로 단련되었다”는 힐러리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맞다. 현실에 바탕한 선택은 특별하게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크게 실패할 일없는 안전함이 장점이다.
반면 과거가 아닌 미래, 싸움이 아닌 포용을 주장하며 미국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오바마의 열변은 유권자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근년 어느 정치가도 주지 못했던 꿈과 비전을 유권자들은 그에게서 받고 있다. 클린턴·부시의 장기집권 동안 고인 물같이 가라앉은 미국을 그가 새롭게 흔들어 놓으리라는 기대가 하늘을 찌른다. ‘가슴’의 선택은 현실을 뛰어넘어 가능성을 여는 위대함이 있지만 도박 같은 위험성을 동반한다.
힐러리와 오바마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아직 예비선거를 치르지 않은 20여개주 민주당 유권자들에게는 여전히 고민거리이다. 평소 자신의 머리와 가슴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지, 중매결혼과 연애결혼 중 어느 쪽이 더 맞는 지를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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