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합중국의 44대 대통령은 여성일까 흑인일까, 아니면 백인 남성일까.
여론조사의 추이를 따라가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확실한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공화당은 경선 후보가 모두 백인 남성인데 비해 선두를 다투는 민주당의 두 후보는 성(性)도 틀리고 피부색도 다르다. ‘경륜과 경험‘을 앞세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60대 백인 여성이고 ‘변화’의 기치를 내건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40대 흑인 남성이다.
이들 두 명 가운데 누가 민주당의 기수가 될 것인지 지금으로선 예측이 쉽지 않다.
주변의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으면 아직도 상당수가 우물거린다. 열렬한 민주당 지지자일수록 망설이는 정도가 심하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표’가 아직도 많다는 뜻이다. 이들이 선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번 민주당 경선에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유권자들의 뜨거운 참여 열기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미시간,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지로 무대를 옮겨가며 치른 민주당 초반 예선 레이스는 곳곳에서 투표용지가 동이 날 정도의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투표율은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권에 넌덜머리를 내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백악관 탈환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하나로 뭉쳐 있음을 보여준다.
백악관을 되찾기 위한 수순의 첫 머리는 당연히 본선 경쟁력이 높은 후보를 가려내는 일이다.
그런데 민주당 유권자들은 힐러리와 오마마의 자질과 능력에 만족해하면서도 이들의 본선 경쟁력에 상당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공화당 후보에 비해 이들이 모자라거나 처져서가 아니다.
민주당의 유력 후보는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이다. 서로 어슷비슷한 공약과 정치이념을 맞줄임하고 나면 ‘흑과 백’, ‘남과 여’라는 차이만 두드러지게 남는다. ‘성’과 ‘인종’이라는 생물학적 차이가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힐러리와 오바마 중 누가 경선에서 승리하건 민주당 입장에선 주요 정당 사상 최초의 여성, 혹은 흑인 대통령 후보 배출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이 ‘역사성’이 본선에서는 십중팔구 민주당 후보의 ‘태생적 한계’로 바뀌게 된다.
민주당 유권자들은 본선의 기본 구도를 결정할 열쇠를 쥐고 있다.
이들이 오바마의 손을 들어줄 경우 미국인들은 본선에서 ‘흑과 백’의 대결구도를 떠안게 된다. 반대로 민주당 유권자들이 힐러리를 택한다면 11월 본선은 ‘남과 여’의 성대결로 귀착된다.
이렇듯 기본 구도는 비슷하지만 민주당 경선과 2008년 대통령 선거 본선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민주당 경선이 소수계에 속한 두 후보 사이의 다툼인 반면 본선은 소수계 출신과 미국 정계의 주류인 백인 남성 정치인과의 겨룸이다.
그리고 바로 이 차이점이 민주당 유권자들을 불안스럽게 만들고 있다.
경선과정에서 형성된 힐러리와 오바마 바람이 ‘역사적’이라는 수식어 속에 감춰진 ‘태생적 한계’를 날려버릴 정도로 본선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힐러리와 오바마는 물론 공화당 후보들조차 성과 인종이 선거전의 이슈가 되어선 안 되고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공염불’일 뿐이다.
싫건 좋건 2008년 대선에서는 성과 인종이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 분명하다. 당적에 관계없이 본선에서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이란 80%이상 거의 동일하고 정치적 이념도 중도 쪽으로 채색되기 마련이니 이들이 지닌 생래적 조건이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자, 그럼 앞서 제기한 질문에 각자 정직하게 대답을 해보자. 당신이라면 미합중국 차기 대통령으로 흑인 남성, 백인 여성과 백인 남성 가운데 누구를 택할 것인가.
이강규 국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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