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TV에서 방영되는 ‘용의 눈물’을 아내와 함께 보는 것이 좀 곤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한국사 대학원 과정을 다니고 있었다. 때문에, 아내는 내가 그 사극의 내용을 훤히 꿰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그렇지 못했다. 물론 대학원 수업에서 그쪽 강의를 듣기는 했지만, 어떤 학생이 들었던 강의를 나중에 다 기억하겠는가.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한국과 미국의 사극 -미국에서도 그것을 사극이라고 하는 가?-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듯하다.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까 해서 히스토리 채널을 자주 보는데, 건국 초기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드라마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보는 인기드라마는 완전히 현대물이지, 사극은 본적이 없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는 늘 사극이 방영되고, 더구나 인기 또한 대단하다. 대체로 TV 드라마에 별 관심이 없는 남성 중장년층들도 사극을 즐기는 경우는 많다.
한국에서 ‘역사’의 인기는 비단 TV 사극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몇 년 전 듣기로, 한국에서 출판되는 대중적 인문학 서적의 절반 정도가 역사 관련 책이란다. 어디 책과 드라마뿐인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서 1,000만 명이 넘는 관객몰이를 했던 몇 개의 영화들도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다. 세상에. 1,000만 명이라면 한국 인구의 1/5이 조금 넘는다. 한국에서 ‘역사’는 잘 팔리는 상품임에 분명하다. 어쨌든 한국사 전공자로서 싫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역사’라고 말하면서 뭉뚱그리지만, 역사는 단수라기보다는 복수라고 하는 편이 맞다. 즉, 역사에는 정치사도 있고, 사회경제사도 있고, 문화사도 있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왕조의 전통이 워낙 강해서 남아있는 기록도 정치사 중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극도 정치사 쪽 사극이 많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극이나 역사소설은 정치사에 해당하는 전체 역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정치사, 사회경제사 및 문화사는 주로 19세기 이후 유럽에서 차례로 나타났는데, 여기에는 아주 분명한 이유들이 있었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에 유럽에는 대략 700-800 개의 독립 국가들이 있었다. 사실 당시의 유럽은 오늘날 미국 영토보다 크지 않았다. 그러한 국가들이 19세기 초까지 50-60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40-50개의 나라로 통합되었던 것이다.
이 격렬한 변화는 위대한 인물들의 탄생과 몰락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의 역사가들은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바로 그 위대한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바로 정치사였다. 한편,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유럽에서는 수많은 혁명과 사회변화가 질풍처럼 전개되었다. 그 밑바탕에는 자본주의의 등장에 따라 조직된 대중의 움직임이 있었다. 더 이상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개인으로는 하잘것없는 집단으로서의 대중이었다. 이것이 바로 사회경제사 등장의 배경이다. 비로소 땅과 농부의 역사, 도시와 상인의 역사가 등장했다. 정치사가 위에서 보는 역사라면, 사회경제사는 밑에서 보는 역사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문화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개인주의 및 민주주의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즉, 정치사와 사회경제사가 그려내는 역사의 모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도대체 그것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사람들이 묻게 된 것이다. 문화사는 이렇게 거시적인 역사가 구체적으로 개인들에게 어떻게 연결 됐는지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앞의 두 가지가 집단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았다면 문화사는 개인의 관심으로 바라보는 역사이다. 비로소 빵과 감자의 역사, 포도주와 커피의 역사, 성과 매춘의 역사, 전염병의 역사와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 옛날이야기는 더욱 풍부해졌다. 이렇듯, ‘역사’는 사람들이 역사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힘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오면서 변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세종대왕과 영조에 관한 TV 사극이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럴 듯하면서도, 소망스러운 어떤 것을 가졌음을 뜻할 때가 많다. 혹시 그런 인기에 현실의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해 줄 지도자에 대한 바람이 비춰진 것은 아닐까? 마치 이번 선거처럼 말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극에 대한 인기가 반가운 일만은 아닌 듯싶다. 사극이 누리는 인기의 한 부분이 현실의 고단함에서 나오니 말이다.
이정철
UCLA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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