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화의 문화산책
후통(Hutong), 사라져버린 그 아름다운 과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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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지는 집들
후통, 그곳은, 지난 여름 은성했던 백사장의 모래언덕이 북풍에 사라져가듯, 그렇게 세상의 외곽으로 밀려나 잊혀져 가는 베이징의 ‘사라진 과거’다. 세상은 진즉에 바뀌어 잊혀진 옛도시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옛사람은 어느 시인의 일갈처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된지도 오래임을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굳이 ‘후통’에 대해 말하려 한다.
북경 거리의 총칭이기도 한, ‘후통’은 몽고어로 ‘우물’ 즉, 물이 도시 건설의 제일 조건임을 잘 알고 있던 몽고인들의 명명법이다. 우습지, ‘후통’의 어원을 듣자, ‘마산’이 언뜻 떠올랐다. 그곳에도 몽고인들이 원정시에 팠다는 ‘몽고정’이 있었고, 그 옆엔 ‘물 좋은 마산의 몽고간장’ 공장이 있었던 것. 사람들은 그 공장의 간장 쑤는 가마솥에 사람이 빠져 죽어 몽고간장이 특별히 맛난 것이라고, 세상이 칭송하는 장맛의 엽기적 노하우를 새살거렸던 것. 그리하여 더럽게 겁도 많은데다, 꺼리는 것도 셀 수 없이 많으며, 따지는 것조차 무지 많은 나는 비겁하게도 말이다, 몽고간장을, 아직도 먹지 못한다.
어쨋거나, 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것은 매 한가지라, 이역만리 황금의 성이 있다는 이 베이징의 거리에도 저 말달리기 좋아하는 몽고인들이 옛날옛적 큰 우물을 파고, ‘후통’이라 명명하였다니 재미있지 아니한가.
베이징 속 ‘후통’의 퇴락한 모습은 올림픽으로 분주하던 서울의 변두리들을 다시 생각케 한다. 노교수들이 쉬는 시간에 분분히 달려가 멱을 감았다던 그 노들의 강변은 회색의 시멘트를 켜켜로 겨바르고 납작하게 부복했고, 옹기종기 들어앉아 늦은 겨울 밤의 퇴학길, 그 춥고 싸늘한 마음을 따스하게 밝혀주던 산동네의 판자집들은 죄다 헐렸으며, 도시미관을 위해 전혀 미적이지 않은 고층 아파트를 떼로 지어 온갖 사람 사는 냄새를 억지로 막아보려 용을 쓰던 ‘우리의 그 서울’ 말이다.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하던 때를 그곳에서 보냈기에 나는 그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러나, 그곳은 늘 하나의 거대한 공사장으로 기억됨은 어쩔 수 없다.
참 분주하게 살아가는 동안 잊혀질 뻔 했던 기억들이 ‘후통’을 대하자 생각키우는 것. 봄바람에 먼지처럼 증발되어버린 걸로 믿었던 그 시간들이 내 안에서 마치 깊은 시루 속에서 켜켜로 떡이 쌓여가듯 그렇게 착실히 기억의 단층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았다.
2. ‘후통’에 대하여
‘후통’ 속에서는 또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옛 문헌에 의하면, 북경성 전체는 황성(자금성)을 중심으로 하여, 근 8km에 달하는 중축선을 그려내고 있는데, 남북으로 뻗은 주요도로와 동서로 놓인 간선도로의 십자형의 도로망에 의거, 종횡 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을 분할하여 ‘방(坊)’이라 불리는 거주지역으로 하였다 하고, 이에 ‘후통’은 남북으로 뻗은 길양쪽의 방(坊)들과 평행 배열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부터 남쪽을 향하면서, 좌우대칭의 바둑판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원(元) 시기 ‘후통’은 400여개가 있었으며, 20세기가 끝날 무렵 북경의 골목, 즉 후통의 숫자는 거의 6000여개에까지 다다르게 되었단다. 그 중, 속된 말로 ‘백화심추후통’이니, 하다못해 ‘개꼬리 후통’에 이르는 이름을 달 정도로 유명세를 타거나 부유한 ‘후통’이 306개, 이름조차 달지 못한 ‘후통’은 중국의 속담처럼 ‘소털만큼’이나 많다니 반도적 스케일밖에 가지지 못한 나로서는 소털이 몇개나 되는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일이다.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마음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과연 어떤 것일까. 짧은 생각에 아마도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사라지는 것을 보며, 나의 사라짐을 본다면 좀 공포영화의 느낌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후통’의 사라짐 앞에 두려움을 느꼈다. 인간의 지각없음에 대한 두려움, 무엇이든 사라지고 말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
어쨋든, 이미 거의 사라져 버린 ‘후통’은 지금 베이징의 최고 여행 상품이 되었다.
아귀같은 재개발의 바람을 요행히 피해간 몇몇 운좋은 ‘후통’들도 성 벽을 허물면서 황성, 내성,외성의 경계 또한 사라지는 통에, 진령(秦嶺), 회하(淮河) 이북의 섬서(陝西).산서(山西) 및 동북(東北)지방 의 건축 양식을 ‘후통’식으로 재탄생시킨 일명 ‘스허유엔(四合院)’식의 가옥구조가 지니던 우아미라든가 단아함과 고풍스러움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없다.
‘후통’이 퇴락하면서 ‘후통’은 가난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곳에는 한 가옥에 서너 가구가 올망 졸망 모여, 우리네 그것보다 사이즈가 살짝 작은 구공탄을 때고, 그 구공탄불에 동네 푸줏간에서 달아 온 돼지 비계를 지지고, 싸구려 자스민차를 달인다.
‘후통’ 으로 관광객들이 몰려 들면서 이제 ‘후통’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싼 값에 집을 매입한 부자들은 그 아름다운 주택들을 이태리 식당이나 술집(Bar)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내눈에 그것은 그것은 차라리 허물어져 한 줌 흙과 주춧돌로 남느니만 못한 생존처럼 보였다. 단순한 사라짐이 차라리 적멸이라면, 이 터무니 없는 변모는 정신의 겁탈이며 역사의 희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휘황찬란한 야등을 단 술집과 말도 안되는 이태리 식당으로 변모한 ‘후통’에는 어눌하지만 순결하고, 가난하지만 고매한 정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3. ‘후통’ 속으로
두 당, 160유엔에 흥정을 하고 타게 된 락사가 잠시 머문 집은 이 거리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집. 대척의 용마루로 보아 과거에 고관의 주택이었던 듯한 집은 문첩과 반두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시선을 끌었다.
삐걱, 문이 열리고 그 입구에서 백발의 노인네 하나가 총총히 달려 나온다. 노인은 첫눈에도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만화영화 ‘호호 할머니’의 그 호호할멈을 무척 닮았다. 호호할멈의 바지 안주머니 어딘가에 반짝이는 숫가락이 데롱데롱 달려 있어,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만해도 아주아주 작아진 호호할멈은 제비의 무등을 타고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다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 나는 호호할멈의 누비바지 주머니를 유심히 살폈다.
집의 내부 풍경은 또한 그렇게 작고 눈물겨웠다. 그녀는 굽은 허리로 차를 우렸고, 만국의 모든 할머니들이 그러하듯 아주, 아주 오래되어 백년은 그 집 테이블 위에 그렇게 있었던 듯 싶은 캐러멜을 내게 주었다. 나는, 아주, 아주 오래된 듯 보이는 그 캐러멜을 차마 먹을 수는 없어서 또 아주, 아주 오랫동안 망연히 손바닥 안에 쥐고 있었다. 호호할멈은 여행객들이 내는 입장료로 생계를 유지하는 듯 했다. 나는 그 호호할멈이 서서 우려낸 차를 앉아서 마시면서 조금 부끄러웠다. 그녀가 아무리 요술 숟가락을 지니고 있을거라 생각해도 여전히 마음이 짠했다. 눈빛이 맑은 그 노인과 목례를 주고 받으며 헤어지는 마을은 텅 비어있는 듯 황량했다.
4. ‘후통’을 걸으며
잠자리가 바뀌면 불면증이 생기고, 물을 갈아 먹으면 설사가 찾아오거나 변비를 앓는 나는 별로 좋은 여행자로서의 자질을 타고나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하리. 자동차 여행을 할 때면, 이상하게도 소변이 자주 마려워 자주 차를 세우게 해 운전자를 심히 아주 불쾌하게 만들거나, 호텔이나 식당에서는 또 얼마나 엉뚱한 요구로 동행의 기분을 망쳐놓는지.
여행자로서 내가 지닌 장점을 굳이 찾아보니, 이국의 길을 하염없이 걷는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한다는 것(파리에서는 에펠타워에서 루브르까지 왕복으로 걸은 적도 잇었으니 나의 걷기 도락은 도락의 수준을 넘어 약간 비정상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음이 있음도 고백한다), 낯선 세계로 난 그 끝없는 길을 절대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걸어 더 멀리 나아가고 싶어한다는 것, 그리고 그 멀리 나아간 곳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조우하기를 열망한다는 사실이다.
호호할멈의 집을 나서며나는, 160 유엔이나 삯을 치른 락사를 물리치고, ‘후통’을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누군가, 그랬다, 여행은 세 번 하는 것이 좋다, 고. 가기 전에 한 번, 가서 한 번, 다녀온 후에 또 한 번. 우리들은 가끔씩 여행을 정복과 착각하거나, 소풍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기도 한다. 시작 전의 설렘과 끝난 후의 시차 부적응 끝엔 오로지 몇 장의 값싼 사진과 나쁜 인상만을 남기기 쉽다. 베이징의 흉중을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이번 여행길에서 얻을 것이라곤 남루한 풍경이 든 사진 몇 장과 수많은 영수증 밖에 없을 것임을 그제야 알았다면 너무 멍청한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왜 베이징에서, ‘후통’에서 ‘걷지’ 않으려 하는가. 잘 안다. 베이징의 겨울은 춥고 바람은 모질어 걸어다니는 모든 사람을 마음까지 꽁꽁 얼려 놓고애 말 것이라는 사실을. 그러나, 생각해 보라. 베이징을, 그리고 ‘후통’을 걸으면서 과연 이 도시와 우리가 만날 곳이 어디인가를, 그리고 그곳에 다다르기까지 이르게 될 사색의 풍요로움과, 또한 그곳에서 나누게 될 무언의 대화를.
<정영화 기자>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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