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작전교육국장 시절(5)
그 동창은 우선 대구에 내려가 결혼을 하였으며 경찰에 체포되었다 한다. 자기를 북한 거물 간첩으로 취급하는 대신 북에 돈이 떨어졌다는 역락을 취하게 하였으나 두 번째부터는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보아 북에서 눈치 챈 증거라며 돈이 떨어졌다는 신호는 제일 기피되어야 하는 신호라 하였다. 경찰 취급의 불만으로 나에게 연락을 취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루어 지지 아니해 나를 직접 찾게 되었다 한다. 우선 나와 관계되는 사건인데도 나와 연락이 없는 경찰의 태도가 석연치 아니하였다. 본인의 요구는 자기의 북한 정보 소유 차원으로 보아 자기를 군에서 크게 활용함으로써 자기 신분도 보장받고 싶다는 요지였다.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 와 정보의 가치 판단은 정보기관에서 가릴 문제였다. 특히 자기 상관인 정보 국장을 자기와 맞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감옥까지 가게 한 김창룡 특무대장에게는 조심하게 대해야 했다. 나는 정일권 참모 총장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고 총장실로 김창룡 특무부대장을 부르게 하였다. 나는 김창룡 장군에게 그 사실을 총장 입회 하에 설명하였으며 경찰이 무슨 연고로 나와 관계된 사건을 알리지 아니했는지 알아주기를 원했으나 끝끝내 답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리 동창일망정 그를 믿을 수 있는지, 정보가치가 있는지 알아줄 것을 부탁하며 동창에게 김창룡 장군을 찾아가게 하였다. 후일 김 장군은 나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내가 군수국장으로 전임한 어느 날 그는 다시 사무실로 나를 찾아와 딸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약간의 돈을 마련해 모녀를 위해 쓰도록 주었다. 그 후 한참 있다 다시 동창의 방문을 받았다. 동창은 당시 영등포에 있던 니콜라스라는 미 공군에서 한국에 나와 있던 정보요원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과 그가 자기에게 낙하산을 이용해 북에 진입할 것을 권하고 있으며 그리되면 자기의 생명이 위태하다는 고충을 이야기 하였다. 나는 그런 문제까지 개입할 권한과 능력도 없어 아무 조언도 못했다. 그 후 그의 방문은 끊어졌다. 5.16이 지나고 내가 미국 수도 가톨릭 대학 경제학 교수로 안식년을 이용, 1982년 고려대학에 초빙교수로 나가게 되었다. 하루는 하얼빈 보통학교와 하얼빈 일본 남녀 중학 동창 공동모임에 나갔었다. 그 동창의 누나는 나의 초등학교 선배이자 일본 여자중학 졸업생이었다. 그는 나의 동창이 이북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나에게 안심이라도 하라는 조로 알려 주었다. 나는 다시 놀랐다. 가족 간이라 해도 이러한 소식이 상호 알 수 있도록 한국이 자유로운 나라는 아닐 터이다. 둘째로 그 누나의 말의 뉘앙스로 보아 남쪽을 위한 북파라기 보다는 북으로 간 듯한 인상을 받았으나 그 이상의 질문은 하지 아니했으니 잘 모를 노릇이다. 어찌 되었든 내가 아는 바로는 대구에서 결혼한 집에도 최소 딸이 하나 있었고 북에도 자기 가족이 있는 것으로 안다. 어찌 됐든지 양단되고 대치된 한국의 백성 되는 사람들의 기구한 운명이 아닌가 생각되니 서글퍼 졌다.
나는 작전국장의 직책에 오래 머물지는 못하였다. 정일권 참모총장이 이형근 대장으로 교체되었다. 당시 군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군수군기의 확립이 간절함도 그 하나였다. 하루는 신임 참모총장이 나에게 군수 국장으로 전임할 것에 대해 나의 의향을 타진해왔다. 나는 군수 업무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며 내가 군수국으로 전임한다는 것은 작전과 군수의 두 일반참모를 동시에 교체한다는 결과를 가져오는 약점이 있다는 의견을 대신 이야기했다. 나는 군수 업무에 종사함으로 말미암아 장래 경제적 문제로 시비의 대상이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그 자리를 기피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수일이 지난 후 이 총장은 또 나에게 전임을 요구하였다. 이번에는 고문단의 의견을 들먹였다. 당시는 군의 중요 인사가 미 군사 고문단과 8군에까지 협조되는 실정이기도 하였다. 나는 군수 분야의 경험이 전무하며 미 군사 고문단이 두 개의 중요 참모가 경질된다는 사실에 대해 찬성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 후 수일이 또 지났다. 이 총장은 나에게 미 군사 고문단과 인사에 관해 상의를 해보았더니 나의 군수국 전임에 대해 대단히 좋은 선택이라고 찬성하더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게 되어 작전국장을 정래혁 장군에게 물려주고 백선진 장군으로부터 군수국장의 자리를 인계받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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