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로 시집 간 미국인 아내들이 느끼는 명암
투표도, 운전도 못하지만 풍요로운 일상 누린다
테레사 말로프가 ‘아, 여긴 켄터키가 아니지’라고
다시 깨달은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그녀가 계획해온 ‘산타선물교환’행사에 금지 명령이
통보된 것이다.
선물교환은 말로프가 지난 10여년간 근무해온
사우디 리야드의 한 병원에서 비공개로 추진해온 행사였다.
비밀로 하기로 했지만 소문은 베일과 히잡 사이로
솔솔 퍼져나갔던 모양이다.
타종교를 엄금하는 이슬람왕국에서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던
이 금발 간호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전 사우디대사의 아들과 결혼한 말로프는
“물론 나도 모슬렘으로 개종했지요. 난 종교가 아닌
그저 하나의 명절을 지키고 싶었던 것인데…”라며 아쉬워한다.
리디야 시내의 샤핑몰에서 거니는 사우디 여성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이곳 여성들에겐 투표권도 운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엄격한 이슬람 계율은 사우디로 시집온 미국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우디 남성들과 결혼한 미국 여성들에겐 그것이 일상이다. 그녀들의 새 나라는 쉽게 적응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일이 선사한 엄청난 부를 상징하듯 열사의 사막 한복판에 ‘마법의 성’처럼 세워진 색유리의 고층빌딩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완고한 관습과 종교, 그 계율에 순종하면서 억압적인 이 사회 속에 녹아들어야 한다. 여기는 그녀들이 성장해 온 수정헌법 제1조와 투표권법의 나라가 아니다 ; 이슬람의 엄격한 경전이 지배하는 왕국이다 - 접대실엔 아바야(이슬람 전통복장)가 걸려있고 하인들이 유령처럼 가볍게 움직이는 곳, 사원의 둥근탑은 초록색 네온으로 번쩍이고, 강간당한 여성은 오히려 정숙치 못했다하여 200대 태형에 처해지는 낯선 나라다.
‘하람, 하람’(금지한다는 뜻)은 미국인 아내들이 가장 익숙하게 들어온 단어다. 사우디 남성과 결혼하여 이곳에 살기위해선 이슬람으로 개종해야 한다. 미국인 아내들은 두 종류다. 진심으로 코란을 섬기는 개종파도 있지만 히잡을 벗어던지고 미국으로 떠날 여름휴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아내들도 많다.
어느 쪽이든 이들의 삶엔 희생만큼 얻는 것도 적지 않다. 사우디 여성들은 운전만 못할 뿐 아니라 투표도 못한다. 그러나 자녀를 키우는 환경은 안전하다. 거리의 폭력도 마약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내는 남편의 서면동의 없이는 출국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종교와 부족의 엄격한 계율은 가족의 유대를 탄탄하게 지켜준다.
생활도 풍요롭다. 일단 저택 안에 들어서면 자유도(몰래이지만) 누릴 수 있다. 수영장이 반짝거리고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무타윈’(종교계율 준수를 체크하는 경찰)도 없으니까. 집밖에선 금지되는 록큰롤도, 밀수한 위스키도, 기독교도 집안에선 다 누릴 수 있다. 이 두 세계 사이에서 알콜중독자가 되는 아내도 있고 본어게인 가독교인이 되는 경우도 많다.
1982년 오하이오 대학에서 사우디 남성을 만나 결혼한 로리 베이커는 “미국인 아내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하며 서로의 상태를 묻고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면서 자신도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처음엔 얼굴 가리개가 불편했지만 “폭탄테러가 터진 이후엔 얼굴을 늘 가리고 다니지요. 외국인은 언제나 표적이니까. 안전하기도 하고 존중도 받고… 이젠 얼굴을 안 가리고 나가면 다운타운에서 비키니를 입고 걷는 것처럼 이상해요”라고 말한다.
3개의 석사학위를 가진 남편, 이곳에서 출생한 두 자녀가 있지만 그녀는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소속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들의 결혼을 마지못해 묵인한 사우디 시가 쪽은 물론 자신의 결혼을 극구 반대했던 친정과도 소원하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요. 내 남편은 꿈에 그리던 이상형이었으니까 우리의 선택에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사교적이고 활동적인 텍사스 여성 샐리 케네디는 아랍어가 유창하고 부유층을 상대로 한 파티 전문업체를 경영한다. “81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길거리에 개와 양이 함께 다녔지요. 그땐 팩스머신도 없었지만 훨씬 자유스러웠어요. 외국여자들은 짧은 아바야를 착용해도 되었지요. 그러나 9.11테러이후 사우디인들은 이교도와 친하기를 꺼려했고 사회는 점점 보수적이 되었습니다” 업체에 고용했던 마술사가 구속되기도 했고, 외간 남자와의 접촉을 엄금한 계율을 어겼다고 체포될까 두려워 자기의 가게에 혼자 가는 것도 두려울 정도다.
이같은 여성에 대한 억압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는 미국인 아내들도 있지만 물질적 풍요와 안전하고 건전한 환경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 매력이다.
피츠버그의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한 아내는 16살 때 27살의 사우디 유학생을 만나 결혼했다. “난 미국을 그리워하진 않아요. 많은 미국인들은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거품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9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잠시 미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동안 그애가 배운게 오럴 섹스였어요. 보수적인 이곳 사회는 부모들에게 도움이 된답니다”
이라크전쟁이후 사우디왕국에서 미국인으로 사는 것은 훨씬 힘들어졌다. 사우디인들로부터의 초대도 줄어들었고 모슬렘사회에서 미국이 얼마나 증오의 대상인가를 깨달으며 놀라는 순간도 잦아졌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는 점점 더 곤두박질 치고 있다.
이혼후 사우디의 간호사 모집광고를 보고 건너왔던 말로프는 일본식당에 갔다가 사우디 금융인인 현재의 남편을 만났다. USC를 졸업한 남편은 비행기표를 준비해두고 언제나 원하면 미국엘 다녀오라고 말한다. “그래도 사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내면의 분노가 밖으로 드러났는지 한번은 남편이 ‘왜 그렇게 화를 내? 당신이 이 사회를 변하게 할 수는 없어. 여기 사는 이상 받아들이고 평화롭게 살도록 해’라고 충고했습니다. 사실 미국에 있을 때도 힘든 일은 많았지요. 난 그걸 잊고 있었어요”
말로프는 ‘하녀’도 없이 싱글마더로 힘겹게 살던 ‘올챙이’ 적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어요. 내 고향 사람들은 내가 부유한 왕자님과 결혼한 줄 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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