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작전교육국장 시절(2)
내가 작전 국장으로 해야 할 문제는 전쟁 중에 팽창된 20개 전투사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느냐 축소시키느냐 하는 문제였다. 나는 전적으로 미국 군사 원조에 의한 한국군의 유지 방침에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국 경제 능력을 초월하는 병력 유지를 전적으로 미국 원조에 의지함은 미국 용병에 지나지 않는 반면 규모는 작아도 부분적으로나마 자기나라 예산으로 유지될 수 있는 군대는 국가 안보 능력에는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지원국의 요구를 맹종치 않을 자유를 부분적이나마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나는 한국의 경제가 미약하고 높은 실업이 계속되는 한 값싼 군대일망정 미 군사 원조를 이용한 군대 유지는 미국 예산을 통한 국민 교육과 사회 안정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군사 원조의 일부가 정치를 통해 국가 경제의 확장으로 전환될 수만 있다면 소수이라도 확장된 우리 경제를 통한 국군의 유지가 훨씬 효과적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은 나의 작전 국장 시절을 넘어 군수 참모부장 시절의 일관된 사고이었다. 나는 당시의 상부나 정치인들께 이를 설득해 보았으나 그들을 이해시키며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는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한 나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얻기 위해 대포 등 중장비의 일부는 군사 원조에 의존하되 당시의 국가가 허용할 수 있는 예산 범위 내에서 유지할 수 있는 병력 규모를 추산해 보도록 요구하였다. 그리고 2, 3년 간격으로 2개 사단씩 감군하는 계획을 세워 보았다. 당시의 국가 예산으로 유지될 수 있는 병력 규모로 6만 명이란 수치가 나왔다. 나는 그 결과를 갖고 광주에 위치했던 연구발전부에서 설명과 의견 교환을 한 적이 있었다. 직원의 부주위로 연구서를 상경하는 기차에서 분실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후일 대한민국은 자국 예산으로 6만 군대밖에 유지할 능력이 없다는 북측 방송이 청취됐다는 보고를 듣고 간첩의 활동이 심상치 아니함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되었으나 부하의 실수를 확대 추궁치는 아니하였다. 나의 건의가 받아들여졌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었으나 그 후 2개 전투사단의 삭감이 한국 정부와 고문단에 의해 지지되어 장면 정권하에서 실천으로 옮겨졌으나 이는 군의 장교 감축으로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결과가 되어 5.16 군사 정변으로 군의 감축은 중단되었다.
내가 작전국장으로 재직 중 심리전 감실이 창설되었다. 심리전 감실의 책임은 휴전 후 심리전을 통한 적의 전력을 약화시키며 적의 심리전 공격에 대비함을 목적으로 작전국의 구처를 받게 되며 책임자는 준장의 계급이었다. 나는 2사단장 시절 제31 연대장으로 기용한 바 있던 김창파 대령을 추천하였다. 김 대령은 대령 진급이 일천하다는 시비가 있었으나 성격이 강직하며 연예인들을 심리전 활동에 많이 활용할 수 있는 능력과 나와의 관계를 교려해 김용배 인사국장의 후원을 얻어 심리전 감실 산파역을 맡게 되었다. 김 대령은 그 후 군으로부터 예편되어 나와는 오랫동안 교유를 유지하다 2003년 여름 암으로 뉴욕의 한 병원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나는 군사 고문단을 통해 미 8군과도 비교적 좋은 사이로 지냈으며 나의 수석 고문관은 나의 재직기간 중 2명으로 지금 그들의 이름은 기억이 없으나 첫 번째 고문관은 키가 후리후리한 미국 육사 출신이었다. 그의 후임도 역시 미 육사 출신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대령이었다. 한국정부와의 정치적인 문제가 나에게까지는 영향을 미치지는 아니했으나 방대한 군을 유지하며 한국군의 작전권이 UN군 사령관에게 이양되다보면 가끔은 정치적 문제가 나에게도 미칠 때가 있게 마련이었다. 한번은 이승만 박사에 대항해 조봉암 전 농림장관이 대통령으로 출마를 선언한 적이 있었다. 숫자는 기억에 없으나 국민들의 지원서명이 필요해 그의 부하에 의해 영등포를 지난 오류동이라는 동네에서 지원 서명을 받는 중 경찰과 마찰이 있어 작은 소요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사건이 확대되면 이를 제지키 위해 군의 동원 가능성이 있게 되고 사전 대책이 나의 소관이 될 것을 우려해 당시 헌병 사령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상황 설명을 하고 헌병사령부의 대책을 문의해 보았다. 그의 대답에 나는 놀랐다. 그는 우리 누구나 이 박사를 지지하지 않으냐며 경찰의 개입이 당연한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장성들 중에 당시 여당인 자유당 비밀 당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감이 오지 아니했는데 헌병사령관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사람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구나 생각되어 군의 정치 관여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앞서게 되었다. 당시의 헌병사령관은 비교적 정치성이 있던 분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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