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기조연설로 버락 오바마에 대한 매스 미디어의 관심이 고조되었을 때 필자가 쓴 칼럼의 제목이 바로 오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장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무렵부터 이미 그를 대통령 재목이라고 본 일부 정치평론가들, 또는 논객들 (political pundits)의 글을 읽고 나서 쓴 칼럼이었다. 민주당원들에게는 아직도 인기가 높은 빌 클린턴의 부인이자 뉴욕 상원의원으로 재선까지 된 힐러리 클린턴과 비교해보면 나이도 그렇고 경험도 일천한 그가 작년 초부터 백악관 입성의 의지를 밝히며 정치자금 모금에 있어서 힐러리 여사와 앞뒤를 다툴 정도였던 것은 흑인 대통령이 가지는 역사적 의의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가지는 의미보다 더욱 심오하기 때문이다. 노예제도의 잔인한 역사에 뒤이은 법적 인종차별이 1960년대까지 지속되어온 미국사회에서 흑인 대통령 탄생은 과거에 대한 대속의 의미와 근본적 사회변혁의 귀결이라는 의미를 아울러 지니는 것이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오바마가 압승하고 클린턴이 겨우 3위가 된 상태로 후보자들이 뉴햄프셔의 예선전으로 향했을 때 모든 매스 미디어는 오바마의 대관식을 예고하고 힐러리의 정치적 부음을 전하는데 열을 올렸다. 모든 여론조사에서도 뉴햄프셔에서 오바마가 힐러리를 크게 이길 것이라고 나왔기 때문에 뉴스위크지에서 빌 클린턴의 후계자로 힐러리보다 오바마가 더 적합하다면서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점치다시피 하는 머리기사가 나온 것이 조금도 이상스럽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힐러리는 2%의 차이지만 오바마를 누르고 정치적 부활을 하게 된다.
어째서 모든 여론조사들과 정치논객들의 예상이 뒤집어지고 힐러리냐 오바마냐가 2월5일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인구 많은 여러 주에서의 예선이 동시에 열릴 때까지 분명치 않은 시소게임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힐러리 자신의 진영에서도 패색이 짙었을 때 힐러리가 여성유권자들과 장시간 질의문답을 하던 중 거의 울상이 되어 호소한 것이 여성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힐러리가 승리했다는 것이 한 가닥이다. 또 한 가닥은 여론조사에서는 흑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언해놓고서도 비밀투표장에 들어가서는 마음이 바뀐다는 소위 브래들리 현상이다. LA의 흑인시장이었던 톰 브래들 리가 1982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출마했을 때 여론조사는 그가 10% 차이로 공화당 후보를 누를 것이라고 선거 직전까지 일관성을 보였지만 그가 낙선했기에 나온 말이다. 또 한가지 해석은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의 여성 정치력의 차이라는 것이다. 뉴햄프셔에는 3선을 한 여성 주지사도 있었고, 현 주 상하 양원 의장들이 여성이고, 주의원들의 35.8%가 여성인 반면 아오와에서는 여성 주지사도, 여성 연방 정부급 의원들도 없었으며, 주의원들 중 22.7%만이 여성이기 때문에 아이오와에서는 오바마가 여성표에 있어서도 힐러리를 앞섰지만 뉴햄프셔에서는 정반대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1월 하순에 있을 네바다의 코커스와 남 캐롤라이나 주의 예선전이 힐러리와 오바마의 다음 접전지이다. 네바다에서는 오바마가 제일 많은 조합원들을 가지고 있는 요식업체 노동자조합의 지지를 확보해놓고 있어 그가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남 캐롤라이나 주는 흑인들이 다수지만 빌 클린턴에 대한 흑인들 지지가 압도적이었다는 역사가 흑인으로서 최초의 당선 가능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오바마의 출현에 의해 어떻게 분해 재융합의 과정을 거칠는지가 변수가 될 것이다. ‘pundit’ 이라는 어원이 인도의 힌디어에서 나와 점술사들을 포함한 학자들이라는 의미였다면 점술사들의 예언이 거의 예외 없이 빗나가기 마련이니까 미국 정치논객들의 예측이 앞으로도 빗나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힐러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예비주자들이 오바마의 기치 표어인 ‘변화’를 자기들의 구호의 일부로 차용하고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 미국 유권자들, 특히 젊은 층의 바람이라면 종국에는 오바마가 승리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가 당선되더라도 정말로 근본적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데 인간 통치의 한계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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