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런던에서는 ‘노예제도 반대 세계 대회’가 열렸다. ‘노예는 노예로서 당연’하다는 통념이 지배하던 시절, ‘노예도 인간’이라는 파격적 생각을 가진 진보적 사상가·운동가들의 모임이었다.
그 대회에 미국의 한 신혼부부가 대서양을 건너 참석했다. 함께 노예제도 반대 운동을 하다 결혼한 헨리 스탠튼 부부였다. 요즘 말로 하면 ‘운동권’ 동지인 이들 부부는 신혼여행 대신 런던 대회를 선택할 정도로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런데 불원천리 달려간 대회장 앞에 엄청난 걸림돌이 놓여 있었다. 아내인 엘리자베스 케이디 의 참석이 금지된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함께 갔던 여성들은 모두 대회장 문 앞에서 쫓겨났다. ‘만인의 평등성’을 촉구하기 위한 대회에서 ‘여성’은 ‘만인’에 포함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노예의 인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내 권리를 찾는 일이 더 시급하구나!” 깨달은 엘리자베스는 이후 운동의 대상을 ‘여성’에 맞추며 미국 여권운동의 1세대 기수가 되었다. 1848년 뉴욕, 세네카 폴스에서 열린 미국 최초의 여성 권익옹호 대회는 노예해방 운동을 하던 여성들이 런던에서 경험한 뼈아픈 성차별을 발단으로 한다.
그로부터 160년, 21세기 미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성이 재산을 소유할 권리, 의사 표현을 자유롭게 할 권리, 이혼할 권리, 비즈니스 상 동등한 기회를 보장 받을 권리, 차별 없이 취업하고 교육받을 권리, 투표할 권리 등 세네카 폴스 여성대회에서 채택된 결의안 은 대부분 실현이 되었다. 법의 보장과 여성 개개인의 능력 덕분에 여성들은 지난 한 세기 활동 무대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혔다.
1848년 여성대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것은 ‘여성의 투표권’이었다. 엘리자베스 스탠튼이 내놓은 안인데 너무 쇼킹해서 그 자리에 모인 청중들이 경악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고조할머니 세대인 그들이 지금 여성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전국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는 광경을 본다면 얼마나 놀랄까. 인종이나 성별의 벽을 넘어 사람이면 누구나 ‘만인’에 포함이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는 분명 발전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성차별의 벽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힐러리 클린턴 캠페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서적 차별의 벽은 아직 굳건하다.
지난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승리해 간신히 체면을 살리기는 했지만 힐러리 진영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가파른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로 굳어졌던 분위기가 새해 들어서면서 확 바뀌었다. 젊어서부터 몸에 밴 선거운동, 35년간 닦은 정치경험, 탄탄한 조직과 자금력을 갖춘 백전노장이 정치 초년생 버락 오바마의 ‘바람’에 밀려 헉헉 거리는 모양새이다.
“힐러리는 절대 안 된다”는 반대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반대일 수도 있고, 클린턴 가의 재집권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지만 가장 보편적인 정서는 ‘강한 여성’에 대한 거부감 혹은 두려움으로 분석이 된다. 남성에게는 지도자다운 면모로 평가되는 ‘강함’이 여성에게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이 되는 정서적 차별이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 그래서 강해보이는 여성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선거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몇 달 전 뉴욕타임스는 고소득의 젊은 여성들이 데이트하는 데 애로가 많다는 보도를 했다. 남성들이 자신 보다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여성에 대해 일종의 위협, 혹은 묘한 적대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더 이상 남성의 보호 아래에서 사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남성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이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는 직장 생활 중에도 자주 노출된다. 지난해 8월 예일대의 한 교수가 발표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화를 내도 성별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여성이 화를 내면 감정조절 능력이 떨어져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남성은 확실한 의사표시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는 1920년 참정권 획득이후 여성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선거이다. 백악관이라는 마지막 남은 유리천정이 극복된다면 여성에 대한 정서적 차별의 벽도 마침내 무너지지 않을까.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