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란 말이 한 때 유행이었다. 체제변화, 정권교체로 번역된다. 공격적 의미로는 정권전복이라는 번역도 가능하다. 이 ‘레짐 체인지’란 말만 나오면 펄쩍 뛰던 사람들이 있었다. 친북 좌파로 분류되는 한국의 정권담당 세력이다.
핵 도발을 하는 북한체제에 대해 워싱턴의 강경발언이 나온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레짐 체인지’를 거론한 것도 아니다. 그런 시사를 풍겼을 뿐이다. 그런데도 격한 반응을 하며 나섰던 그들이다.
이제 와서 보면 아이러니도 그런 아이러니가 없다. 김정일은 ‘언터처블’의 존재다. 그러면서 북한의 레짐 체인지 가능성에 대한 언급만 나와도 길길이 날뛰던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레짐 체인지’ 상황을 맞게 됐으니.
한반도 남쪽에서의 상황은 그렇다고 치고, 북에서 그러면 ‘레짐 체인지’의 가능성은 없을까. 한국의 대선이 좌파소멸 구도의 결과를 가져오면서 새삼 던져지는 질문이다.
한국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대선서 승리함으로써 정권교체가 이뤄진 반면 비무장지대 북쪽에서는 권력승계 절차가 비밀스럽게 이뤄지고 있다. USA투데이지 보도다. 이 신문은 김일성-김정일을 잇는 제3대 권력승계 가능성을 점친 것이다.
북한의 경우 권력이동은 그러니까, ‘레짐 체인지’가 아닌 세습의 형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틀린 전망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부자 권력세습을 해낸 북한이니까.
북한은 해마다 새해 첫날 신년 공동사설이라는 걸 발표한다. 올해에도 사설을 통해 ‘김일성주석 출생 100년이 되는 2012년에는 기어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려는 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고 의지’라고 밝혔다.
무슨 말인가. 앞으로 4~5년 내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김정일 후계구도를 굳힌다는 해석이다. 그 후계자로 유력시 되는 인물은 2남 정철이다. 시간을 벌면서 3대째 권력세습을 다진다는 추측이다.
사설은 사설이고, 대체적인 전망은 그러나 점차 ‘레짐 체인지’쪽으로 기운다. 북한에서 권력이동이 있을 경우 승계가 아닌 정변에 가까운 정권교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무엇이 이런 전망을 가능케 하나. ‘베이징 컨센서스’라고 할까, 중국의 대북정책이라고 할까. 중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지면서 나오고 있는 관측이다.
“북한은 외부세계에 점차 문을 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전권을 휘두르는 시대는 지났다.” 베이징 인민대학 교수인 시인홍의 말이다. 한 교수의 개인 생각이 아니다. 중국이 원하는 김정일 이후의 북한 통치구조로, 중국식 모델을 따르라는 충고다.
베이징이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북한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장한, 그리고 중국의 말을 잘 듣는 북한이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다. 경제도 말이 아니다. 그런 북한을 중국은 한동안 순망치한(脣亡齒寒·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이론)의 논리로 끼고 돌았다.
그런 북한이 점차 버거워진 것이다. 특히 북이 핵실험을 한 후에는. 개혁·개방을 계속 거부할 경우 중국은 따라서 평양에 다른 정권을 세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포스트 김정일의 타이밍을 그 적기로 보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 괴뢰정권은 물론 ‘주권국가’로 위장되지만.
이 시나리오가 점차 유력시 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위성국가로 만드는데 반대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다. 북한문제는 중국에 ‘아웃소싱’을 해라. 벌써부터 워싱턴에서 나온 소리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미국은 핵문제만 해결하면 북한이 중국의 완충지대가 되어도 그만이라는 말이다.
‘극도의 피로감이 배어 있다’- 주체 97년이라고 하던가. 2008년을 북한식 달력으로. 그 ‘주체 97년’ 첫날 발표된 북한의 공동사설에 대한 총평이다. 온통 비정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그런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버티겠다는 게 공동사설의 요지다.
그 가운데 ‘수상쩍은 뉴스’만 잇달고 있다. 중국국적 민항인 에어 차이나는 올 1월부터 주 3회로 계획된 베이징-평양노선 취항을 돌연 취소했다. 북한이 지난 12월31일 핵 프로그램 신고 데드라인을 지키지 않은 뒤 나온 조치다.
‘워싱턴 발’ 뉴스는 더 수상쩍다. 핵 폐기회담을 아예 북한군부와 직접 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와서다. 수령절대주의 체제가 북한이다. 그 체제에서 군부가 따로 논다는 것으로, 김정일의 영이 안 선다는 얘기다.
‘햇볕 10년’이 노을로 사라져 버린 2008년은 김정일에게 정말이지 힘든 해가 될 것 같다.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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