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 마음과 상태가 바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한계다. 사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어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강하다가도 약해지고, 머리를 들다가도 고개를 숙이게 마련이다.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가 “불가능한 것은 없다”로 시작하여 오늘날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능력에 대하여 많은 칭찬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슐러 목사도 결국 인간의 약함과 부정적 사고방식을 뛰어 넘어 능력있게 사는 방법의 결론을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결론짓고 있다.
사람의 의지와 신념이 아무리 강해도 자신이 궁지에 몰릴 때는 마지막 선택은 보이지 않는 신에게로 다가가게 되어 있다. 죽음의 순간이 인간은 가장 진실하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그 마음에 종교적인 씨를 늘 품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나치 수용소에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때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지만 믿음과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수용소 벽에 쓴 글 중에 이런 글이 있다. “내일부터는 슬퍼지겠지. 오늘이 아니고 내일부터는. 오늘은 기뻐할 거야. 매일같이 어려운 일이 닥쳐오되 나는 이렇게 말하지. 내일부터는 슬퍼지겠지.” 내일을 걱정하기보다는 오늘을 기쁘고 희망있게 사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종교성이 있다. 그러기에 종교적인 대화를 나누고, 종교적인 행사에 참여하고, 종교적인 활동에 관여를 한다. 특히 고독과 시련을 만났을 때 더욱 종교성을 보인다. 산에 올라가서 수도한다든지, 아니면 사찰을 찾는다든가 교회를 찾아간다. 때로는 정치적인 홍보 활동이 있을 때는 가끔씩은 종교가 정치의 도구나 방법이 될 때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종교성을 자신의 신상을 위해 장식품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인간의 종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신앙적인 면은 없는 면을 책망하신다. 그래서 자주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자들아”라고 소리를 높이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마태복음17:17)
성경에서 바리새인은 종교성은 있으면서도 믿음이 없는 대표적인 부류의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고, 무거운 짐을 남에게 지우고 자기의 손으로는 하나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잔치나 모임의 자리에 먼저 앉으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문안인사 받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을 실족하게 하고, 종교적인 형식은 있으나 신앙의 도리는 버리는 사람이라고 지적을 받는다.
예수님 오시기 전 6개월 먼저 세례요한이 태어났다. 세례요한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미리 길을 준비하는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났기에 예수님보다 형이고, 예수님보다 집안도 좋았다. 그리고 당시에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있었기에 자신의 욕심을 위한다면 백성을 선동하거나 유인하여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큰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철저히 예수님을 위해 태어나 예수님을 위해 산 사람이었다. 고운 옷도 입지 않았다. 좋은 집에서 살지 않았다. 비싼 음식도 먹을 수 없었다. 불의와 현세에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하였다. 잘못하는 것을 잘못하였다고 책망하였다. 그렇다고 자신의 독선과 아집에 의한 독불장군은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 앞에서 신앙으로 살아갔다. 결국 그는 예수님이 사역하는 동시에 죽고 말았다. 그는 세상의 명예와 인기도 누리지 못했다. 예수님을 위해 산 사람이었다. 그는 참 신앙의 사람이었다.
종교적인 것은 사람을 위해, 사람 안에서, 사람에 의해 이끌리는 세상적인 관습에 치우친다. 신앙적인 것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에 이끌리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겨울바람 맞아가며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외로운 눈물 나는 나무의 소리라 할지라도 곧 나무에 파란 잎이 돋아날 것이라는 희망 가운데 사는 것이 신앙이다. 종교적인 것은 잠간이지만 신앙적인 것은 오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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