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직후부터 직원 수만명 `신분 숨기고’ 방제 참여
충남도에 50억 기탁하기도..삼성측 실질적 대책 내놓겠다
(태안=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입은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습니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가 발생한지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사고 원인 제공자 가운데 하나인 삼성이 거센 비난여론의 도마 위에 올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을 향해 빗발치는 비난의 요지는 태안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찾아온 수십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차가운 칼바람을 맞아 가며 방제작업을 벌여 온 지난 한 달간 삼성은 형식적으로나마 사과의 말 한 마디 내놓지 않았다는 것.
아직 사고의 책임소재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추후 민형사상 책임 범위 등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 해도 지금까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방제작업도 아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 대다수 태안 주민들의 생각이다.
사고 직후에는 당장 화급한 방제작업에 온정신이 쏠려 이 같은 `삼성 비난’ 여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보름을 넘기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불거지는 형국이다.
주민 신모(39)씨는 이번 사고가 삼성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은 어린애들도 다 아는데 삼성은 책임공방만 일삼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은 방제가 급해 꾹꾹 참고 있지만 끝내 삼성이 고자세로 나가면 주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소원면 만리포 주민대책위원회는 최근 성명을 통해 주민들과 태안의 청정해역을 사랑하는 많은 자원봉사자, 군경 등이 검은 기름을 걷어내며 뜨거운 동족애를 나누고 있는데 어찌 가해자인 삼성의 임직원 모습은 보이지 않느냐면서 삼성은 즉시 만리포의 기름제거 작업에 동참하고 피해주민 배상과 피해지역의 항구적 복구 방안을 내놔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요즘 태안에서는 삼성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문구가 적힌 방제복을 착용한 자원봉사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꼬이고 있는데도 삼성측은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만 태우고 있다.
나름대로의 사정 때문에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못했지만 이 같은 비난여론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삼성쪽에도 억울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삼성측에 따르면 사고 발생 다음날인 지난해 12월 8일부터 지금까지 대전 및 충남 지역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매일 직원 1천 명 내지 1천500명을 태안의 피해현장에 보내 방제작업을 벌여 왔다.
하지만 자원봉사에 참여한 다른 기업이나 단체, 공공기관 등이 자신의 소속을 떳떳이 밝히는 것과 달리 삼성 직원들은 혹시라도 격앙된 주민들을 자극할까 걱정돼 신분을 숨기고 방제작업을 해왔다는 것이 삼성측 설명이다.
일부 직원은 방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섬에 들어갔다가 며칠 동안 나오지 못하는 등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삼성 관계자들은 하소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매일 2억-2억5천만원 상당의 방제물품을 현장에 전달하고 작년 연말에는 충남지역 삼성사업장 명의로 충남도에 방제자금조로 50억원을 기탁하기도 했지만 매번 외부에는 비밀에 부쳤다.
삼성 관계자는 주민들의 끓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그러나 형식적이고 두루뭉술한 사과를 하는 것보다 당장은 방제에 집중하고 나중에 명확한 사과와 함께 주민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보상책을 마련하겠지만 섣불리 대책을 발표했다가 졸속이라는 비난을 살 수도 있어 폭넓게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그룹 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태안해경은 2일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 선장 김모(39.구속)씨 등 관련자 5명을 해양오염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 검찰에 송치했다.
cob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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