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이 밝았다. 새해에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신년벽두에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고심하다 내가 쓴 책 ‘잘 하겠습니다’에 나왔던 내용을 소개할까 한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은 부하직원을 야단칠 때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고 했다. 부두 노동자 시절 몸으로 익힌 정 회장의 철학이 담긴 욕설이라고 한다. 그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재미있다.
정 회장이 열아홉 살 어린 나이로 인천에서 막노동을 할 때였다. 그때 묵었던 노동자 합숙소는 밤이면 들끓는 빈대로 잠을 잘 수 없을 지경이었다. 몇 사람이 빈대를 피하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침상을 짜서 침상 위로 올라가 자기로 했는데 빈대는 침상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 사람을 물었다. 사람들은 다시 머리를 짜내 침상 네 다리에 물을 담은 세숫대야를 하나씩 고여 놓고 잤다. 하지만 편안한 잠은 며칠뿐이었다.
빈대가 세숫대야 장애물을 뛰어넘어 다시 사람들을 물기 시작한 것이다. 정 회장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빈대들이 침상 위에서 자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을 담은 세숫대야를 지나야만 했다. 헤엄을 못 치는 빈대들이 몽땅 세숫대야 물에 빠져 죽거나 사람들을 공격하지 못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 의문은 오래지 않아 풀렸다.
그것을 알고 나서 정 회장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정 회장이 유심히 살펴본 결과, 그 원인을 알아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침상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게 불가능해진 빈대들이 벽을 타고 까맣게 천장으로 올라가서는 천장에서 사람 몸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더라는 것이다.
정 회장은 그때의 소름끼치는 놀라움을 평생 동안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하물며 빈대도 목적을 위해 저토록 머리를 쓰고, 저토록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서 성공하지 않는가. 인간도 무슨 일이든 절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그는 나중에 사업을 하면서 빈대에게서 배웠던 그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자주 응용하여 전설 같은 기록을 숱하게 남겼다.
천지가 얼어붙은 한겨울에 유엔군 묘지 단장 공사를 맡아 할 때, 공사 발주처인 미군으로부터 그 묘지를 파랗게 단장해 달라는 작업 지시를 받았다. 고민 끝에 그는 파란 보리 포기를 떠다 묘지에 심어 미군으로부터 OK를 받아냈다. 조수(潮水) 간만의 차이가 너무나 커 콘크리트를 쏟아 붓는 대로 파도에 떠내려가 도저히 공사를 할 수 없었던 서산 간척지 공사에서도 그의 아이디어는 빛났다. 수십만 톤급 폐유조선 한 대를 끌어와 바다에 수장시키는 것으로 조수 간만의 차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정 회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은 바로 한국 경제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만들 때의 일이다. 두 사람이 조우하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만 해도 가슴이 고동친다.
박 전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은 경제 개발에 필요한 차관을 얻기 위해 1965년 독일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한국에는 변변한 비행기 한 대 없어 독일 비행기를 빌려 타고 독일을 방문했던 박 전대통령은 독일의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보고 한눈에 매료됐다.
당시 포장도로조차 흔치 않았던 한국에서는 시속 50킬로미터로도 달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우토반은 시속 200킬로미터라는 경이적인 속도로 차가 달릴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박 전대통령은 현대 정주영을 불러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박정희와 정주영의 독대(獨對)였다. 일찍이 해외 건설에 눈을 돌렸던 현대는 그 무렵 태국에서 국제 경쟁 입찰로 고속도로 공사를 한 바 있었다. 수지는 맞추지 못한 공사였으나, 고속도로 건설 경험의 축적이라는 지적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한국에는 그런 경험을 가진 건설회사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고속도로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마저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고속도로 건설이라면 선진국의 우수 건설회사들이나 하는 난공사로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성격상 고속도로 공사는 바로 시작됐다. 정주영 회장은 신이 났다. 공사는 불철주야(不撤晝夜)로 진행됐고 공사장에는 항상 정 회장이 있었다. 지프 속에서 잠시 잠깐 잠을 자는 습관이 바로 이때에 생겼다고 한다. 하늘에는 가끔 박정희 대통령이 공사 진행 현장을 돌아보는 헬리콥터가 떴다. 세계적인 건설회사들은 한국이 자신의 힘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니까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해낼 수 없는 공사가 바로 당시의 고속도로 공사였다.
그러나 박정희의 독기와 정주영의 오기가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걷어냈다. 공사는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막바지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소백산이 가로 놓여 있는 옥천과 영동의 당재터널을 팔 때였는데 터널을 파들어 가보니 토질이 경석이 아닌 절암 토사였다고 한다. 터널 공사에서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경석(硬石)보다 모래나 진흙 같은 절암(節岩) 토사(土砂)를 만난다는 것은 날벼락이나 다름이 없다. 파기만 하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장비들이 수없이 망가지고, 공사 현장에서 생명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터널을 파고 들어가기는커녕 무서워서 공사 현장에 접근조차 못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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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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