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빨리도 저물어 간다. 연말연시의 공연히 떠들썩하고 들뜬 분위기는(대개는 대목을 보려는 상혼에 의해 부추겨진 것이겠지만) 외로운 사람들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같은 직장에 이태리 계통의 아주 착한 미국인 동료가 있는데 얼마 전 이혼을 당해 혼자 살며, 하나밖에 없는 10대의 딸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눈치다. 평소 우울증과 약간의 정신적 질환이 있는데 요즈음 부쩍 그 증세가 심해져 내 사무실에 자주 찾아와 하소연하곤 한다. 일류대학을 졸업한 재원인데, 인생의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 깊게 주름 패인 얼굴과 백발의 머리,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이 동료의 모습에서 인생은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운 생각이 들 때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심장으로 들어만 주어도 큰 위로가 되는 것을 내 자신이 체험했기에, 내 사무실 문은 당신한테 항상 열려있다고 동료에게 말해주었다. 그냥 함께 있어 시커멓게 멍든 사연을 들어주는 것 밖에 사실 별 도움을 줄 수가 없다. 결국 인간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상대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 느끼며 대신 져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나는 남의 고통과 상처를 잘 이해한다고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닉슨 대통령 특별 법률보좌관이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지금은 오랫동안 감옥 선교에 헌신하고 있는 찰스 콜슨이 쓴 책 ‘거듭나기’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한 때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야비했던 콜슨을 몹시도 비난했던 독실한 기독교인인 한 국회의원이 나중에 콜슨이 회심하고 진실한 기독교인이 된 후에 콜슨 대신 자기가 남은 형기를 마치겠다고(그 당시는 그러한 법이 존재하였다 함) 자원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 진한 감동의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다.
죽음을 문턱에 둔 사람들을 통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글로 엮은 ‘인생 수업’(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공저)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시애틀 근처에 사는 한 젊은 어머니는 직장에 가면서 여섯 살 난 딸 보니를 이웃집에 맡겼는데, 갑자기 질주하던 자동차가 놀고 있던 보니를 덮쳤다. 경찰이 출동하여 심하게 다친 아이를 안아 올려 품에 꼭 껴안았는데 응급요원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아이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를 꽂고 병원으로 응급 호송하여 살리기 위해 분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연락을 받은 보니의 어머니는 병원으로 뛰어 들어와 숨을 거둔 채 누워있는 어린 딸을 보자 심신이 무너져 내렸고, 의사와 간호원이 딸의 생명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지만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그곳에 거의 네 시간 동안 묵묵히 앉아있던 경찰관이 일어나며 말했다. 사고 현장에 맨 먼저 도착하여 보니를 가슴에 품어주었던 바로 그 경찰관이었다. 그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아이가 그때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너무 고마워하며 딸이 마지막 순간에 비록 낯선 사람으로부터라도 사랑을 느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마침내 위안을 얻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사랑에서, 삶에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인간은 참 외로운 존재다. 사랑과 위로를 먹어야 사는 존재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만 있다면 밖의 요란한 천둥번개가 두렵지 않은 것 같이 어른도 그 품에 안겨 있으면 더 이상 외롭지도 두렵지도 않은 존재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은 몸소 인간의 몸을 입고 낮은 데로 임하셔서 우리를 죄악에서 끌어내어 그 품에 안기 위해 임마누엘의 예수로 오셨다. 또 부활승천 후에는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와 함께 한다. 인간은 아무리 가까웠던 부부나 형제자매, 친구도 결국은 하나하나 떠나가야 하는 숙명적으로 혼자인 존재인데,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 인생의 걸음마다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만은 인생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 받고, 인생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근본적으로 해결 받은 사람들이라 말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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