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한인2세 미셸 이씨가 워싱턴DC의 교육감으로 임명되었을 때 사람들의 첫 반응은 “도대체 저 작은 한국여자가 무얼 할 수 있단 말이야?”였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요즘 37세의 그 ‘리틀 코리언 레이디’가 워싱턴의 전 교육계룰 뒤흔들고 있다. 미 공립교육 실패의 표본으로 악명 높은 DC교육구에 일대 쇄신이 시작된 것이다.
교육구의 분위기부터 확 바뀌었다.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치면서도 열심히 일해 온 헌신적 교사들은 환호하고, ‘철밥통’을 믿고 무사안일로 일관해온 공무원들은 자칫 퇴출당할까, 좌불안석이다. 지난 주 시의회는 신임교육감에게 비노조 직원 해고권한을 부여하는 새 인사법안을 압도적 표차로 잠정 가결시켰다. 미셸 자신이 선언해온 ‘급속한 변화·철저한 교육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첫 승리를 의미한다.
교육감 직을 제의받았을 때 미셸의 첫 대답은 “노우”였다. 코넬과 하버드에서 교육행정을 전공하고 비영리교사교육단체인 ‘뉴티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그는 교육개혁을 위해 아웃사이더로서 자신이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7세의 동갑내기 에이드리언 펜티시장이 찾고 있던 새 교육감의 모습은 미셸과 딱 들어맞았다. 전형적이 아닌 혁신적 아이디어로 가득 찬 신선한 새 얼굴이었다.
“내가 아이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한, 어떤 요란한 반대가 터져 나와도 나를 지지해 줄 수 있습니까? 정치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를지 모르는데 약속할 수 있나요?” 펜티시장은 약속했고 교육감 경력은커녕 3년의 초등학교 교사직 외에는 교육일선에 선 적이 없었던 미셸은 빗발치는 우려와 회의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교육감에 취임했다.
DC교육구는 학생 5만명, 교육공무원 11,500명, 10억달러 규모의 방대한 행정기구다. 학생 90%가 흑인인 교육구의 40년만에 첫 비흑인, 텃세 심한 워싱턴에 별 연고도, 정치적 자산도 없이 맨손 입성했지만 ‘리틀 코리안 레이디’는 당당하고 거침이 없었다. “교육감은 내 전문직이 아니예요” - 자리에 전혀 미련이 없다는 뜻이다. “난 아이들만을 위해서 일합니다”
취임하자마자 사무실 가구부터 정리했다. 핑크빛 카펫 위에 놓인 응접세트와 TV를 치운 것이다 “도대체 내가 여기 앉아 TV 볼 시간이 있을 것 같습니까?” 그 말처럼 지난 몇 달 그는 정말 바쁘게 워싱턴시내 곳곳을 발로 누비었다. 공룡처럼 거대해진 교육 관료주의와 한판 대결의 회오리를 몰고 다녔다.
목표가 뚜렷하고 그 실현방법을 확신하는 그의 행정스타일은 빠르고 단호하다. “교육개혁은 사회정의 문제”라고 단언하는 그의 개혁목표는 불평등을 바로 잡는 일이다. 가난한 소수계 아이들에게도 부유한 백인 아이들과 꼭 같은 교육의 기회, 교육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립교육으로 평등한 교육환경을 만드는 것이 미국의 가장 시급한 사회정의 실현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선 열심히 가르치는, 헌신적인 훌륭한 교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믿는다.
159개 학교의 교장들을 일일이 면담했고 역대 교육감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리수업을 담당한 보조교사들과 미팅도 가졌다. 과연 ‘악명’답게 교육행정 곳곳엔 무능과 나태와 무책임이 만연해 있었다. 교사들의 봉급은 제때 지불되지 않았고 예산배정은 교실보다는 본부운영이 우선이었다. 1년에 병가를 무려 90일이나 쓰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같은 날 한 학교에서 15명의 교사가 결근하기도 했으며 이틀도 안 걸릴 민원이 두주가 넘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무능행정에 대한 철퇴와 함께 등록율 낮은 학교의 통폐합 등을 급선무로 밝히자 거센 반발이 빗발쳤다. 감원정책에 노조가 반대했고 폐교대상 지역의 학부모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내 선거구내 폐교는 안된다’는 시의원의 정치적 계산은 쉽게 무시했지만 학부모들의 항의엔 정성을 다해 설득을 거듭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합의에 도달합니다.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위하는 마음이 같으니까요”
이제는 어디를 가든지 - 학교이건, 회의장이건, 도서관이건, 심지어는 마켓에서도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넨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이해계산 없이, 자리에 미련을 두지 않는 순수한 열정이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은 것이다.
부모 얼굴 보기조차 힘든 채 험한 거리에서 일상을 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미셸의 ‘매직’이 기적을 가져다주기 바란다는 비관론이 없는 건 아니지만 미셸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다. 현재 70% 포인트 이상 되는 흑백학생의 실력 차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없애겠다“고 다짐한다.
전국의 교육계가 승패여부를 주목하고 있는 그의 교육개혁은 사회의 가장 어두운 코너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려는 젊은 교육가들의 순수한 열정을 대변한다. 보다 나은 미국을 만들어가는 정의실현의 선두에 한인2세가 서있는 것이다. 올해의 ‘자랑스러운 코리언 아메리칸’으로 단연 그를 추천하고 싶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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