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막판 코너로 몰아세우던 BBK사건의 검찰수사 발표를 며칠 앞둔 지난 달 말 이명박 후보는 한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이 눈물 나도록 고맙다. 1년 넘도록 시달렸는데 흔들림 없이 지지해주시고…정말 한 몸 으스러지도록 일해 보답 하겠다”
이어 검찰의 수사 의혹과 그의 거짓말을 ‘입증’하는(‘1백억원 가치의 폭발력’을 자신하던) 동영상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 민심은 철벽이었고 그는 결국 승리했다. 그것도 과반수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 소감 첫마디는 한나라 당사에서도, 서울 시청 앞에서도 고맙습니다, 였고 특히 자신의 상징인 청계천에서는 “고맙고, 고맙고, 정말 고맙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매우 겸손한 자세로,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승리의 키워드는 경제였다. 결과적으로 그를 온갖 네거티브에서 지켜준 민심은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동안 여론조사를 통해 차기대통령의 최우선과제는 ‘먹고사는 문제’라던 압도적 대답이 그대로 투표로 이어진 것이다.
합리적 개혁세력이었던 수도권의 표심도, 386세대 노무현 지지자 상당수도, 정치적 성향이 탈색된 젊은 세대도, 두 자릿수 직전까지 올라온 호남의 한나라당 득표율도 모두 경제 살리기 하나를 구심점으로 모여들었다. 정권교체 갈망의 주요인도 따지고 보면 민생정책의 실패, 경제에 대한 불안에 기인한다.
지난6월 본격적 대선행보에 나서며 15%로 시작되었던 이후보의 지지율은 10월을 지나며 40%로 치솟은 이후 14개월 동안 1위를 고수해왔다. 민심을 정확히 읽은 덕이다. 그의 경제 살리기 약속은 참여정부의 ‘말 말 말’에 질린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적’을 근거로 제시했다. 기성정치가들의 막연한 공약(空約)과의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의 약속에는 그림이 보였다. 그의 이력서는 전쟁의 폐허에서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을 자부하는 한국민의 정서와 폭넓은 공감대를 가진다. 찢어지게 가난한 고학생에서 입사 12년 만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한 샐러리맨의 신화가 아직도 서민들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대기업 최고경영자와 서울시장의 경력도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다. 군대를 제외한 모든 국정요소가 다 있는 ‘작은 나라’ 서울을 4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해온 성적표가 있다. 맑게 흐르는 청계천, 교통지옥이었던 서울 도심지를 질서정연하게 오가는 버스들을 피부로 느끼며 그가 공언하는 5년 후 한국의 모습이 빈 약속만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 것이다.
국민이 원한 것은 희망이었고 희망심기에 성공한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기대치가 높은 만큼 부담도 클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 기업인이 신명나는 사회를 만들어 잠자고 있는 수백조원의 자금을 투자로 불러내면서 수백만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은 이명박 특유의 불도저 식 돌파력을 동원하면서 곧 시동을 걸게 될 것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가 ‘잘사는 국민’ 다음으로 내건 ‘따뜻한 사회’의 실현일지 모른다. 기업과 나라의 경영은 다르다. 경영철학이 달라야 한다. 기업에선 가차없이 도태시키는, 능력이 모자라 낙오되는 사람까지 모두 안고가야 하는 것이 나라다. 따뜻한 사회다. ‘CEO 이명박’이 ‘대통령 이명박‘으로 바뀌어야 가능해진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갚아야할 또 하나의 빚이 있다. 그동안 그의 지지자들은 ‘노망난 국민’‘최면에 걸린 집단’등으로 비난받으며 많은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공인의식과 도덕성이 부족했던 그의 과거 때문에 자괴감을 갖게 된것은 직접 표를 찍은 국내의 유권자만이 아니다. 해외의 한인들도 다르지 않다.
어제 대선결과를 전하는 세계의 미디어들은 대부분 ‘한국민은 도덕성 보다 경제성장을 택했다’는 요지의 분석을 덧붙였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한국의 한 대학생은 “깨끗하지만 무능한 지도자보다 좀 부패했어도 유능한 지도자가 우리에겐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현실을 반영한 솔직한 의견이라 해도 나라의 미래인 21세 젊은 대학생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LA의 한 주부도 “이곳에서 자라는 내 아이들이 고국의 대통령을 존경할 수 있도록 앞으로는 윤리관을 바로잡아 달라”고 방송을 통해 당부했다.
그가 갚아야할 또 하나의 빚은 반듯하고 따뜻한 정치를 실천하며 이번 선거에서 희생된 한국민의 도덕성 이미지 훼손을 바로 잡는 일이다. 5년 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는 날 “고맙고 또 고맙다”는 오늘 그의 인사를 국민들이 퇴임하는 그에게 되돌려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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