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손 발데스호 기름유출’ 전문가 리키 오트 박사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엑손 발데스(Exxon Valdez)호의 기름유출사건을 장기간 연구해온 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리키 오트(53.여) 박사는 16일 기름유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방식이 또 다른 재앙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바다에 유출된 원유에 유화제를 사용하는 것은 생태계를 보호하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이로 인한 2차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유화제의 대량살포보다는 자연친화적인 방제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때 알래스카 지역에서 어부로 생활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 오트 박사는 엑손 발데스호 사고에 대한 대표적인 환경 운동가로 유명하다.
그는 이 사고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알래스카 유류 오염지역재단’ 등 3개의 환경단체를 설립해 활동해오고 있으며 `심오한 진실과 기업의 신화-엑손 발데스 기름유출의 잔재’ 등의 저서를 통해 기름유출의 피해와 방제작업의 문제점에 대해 알리기도 했다.
그는 이날 연합뉴스와 가진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정부와 석유회사는 (유화제가) 유막(油膜)을 없애 마치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에 유화제의 사용을 선호한다며 하지만 이는 유화제에 포함된 화학물질의 독성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알래스카에서도 연구기관인 `프린스윌리엄해협 지역시민 조언그룹’이 유화제의 오염 치유효과에 대해 장기간 연구를 펼쳤지만 결국 (유화제가)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노르웨이 등 몇 나라에서는 유화제 사용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반면 유화제로 인해 생긴 오일볼은 여러 사례를 통해 바다 속 물고기에 장기적이고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오트 박사는 방제작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이나 자원봉사자 등도 작업 중 오염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엑손 발데스호 사건 당시 방제작업에 동원된 1만1천 명 중 절반이 넘은 6천722명에게서 호흡기 질환이 발생했으며 사고 후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픔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며 또 다른 오염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방제 작업중인 노동자와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방제작업자들이 마스크와 장화, 장갑, 비옷 등의 장비를 충분히 갖춰야 하며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체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시간을 갖는 한편 휴식시간에는 오염지역에서 떨어져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며 정부는 작업자들의 건강을 꾸준히 진단해서 이들에게 두통, 어지럼증, 호흡곤란, 기침 같은 증상이 보이면 바로 쉬고 치료를 받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트 박사는 지난 2005년 환경운동연합의 초청으로 여수에서 열린 시프린스호 사고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해 한국의 환경운동가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씨프린스호 사고의 흔적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는 태안 앞바다의 기름유출사고 소식을 듣고 매우 슬펐다. 한국이 10여 년 전 여수 사태 때와 비슷한 재난을 다시 맞았다는 사실이 가슴아프다고 한국인들을 위로했다.
그는 일단 야생 생물이 기름에 오염되면 더 이상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만큼 생태계에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해야한다며 알래스카에서도 바닷속과 해변의 기름으로 인해 먹이사슬에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했고 그 결과 사고 후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도 청어의 수는 사고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상태며 기름에 오염된 해변에는 새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기름 속의 다환방향족탄화수소(PHAs)가 생명체의 몸에 축적되면 장기간 피해를 준다며 알래스카에서는 정부와 과학자들이 이 물질의 수치를 계속 측정 중인데 정상수치가 될 때까지는 앞으로 40년은 더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엑손 발데스호 사건이란 = 1989년 3월24일 알래스카 해역에서 발생한 원유유출 사고로, 사상 최악의 해상오염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알래스카 산 원유 `엑손 모빌’社 소속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가 미국 캘리포니아로 가던 중 알래스카 만의 해협인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좌초됐고 그 결과 24만 배럴의 원유가 흘러나와 알래스카만 일대를 뒤덮었다.
사고 후 미국 정부와 석유회사는 다량의 유화제를 살포하고 고압으로 뜨거운 물을 분사하는 등 마구잡이식 방제를 벌이는 악수를 둔 끝에 이 지역 생태계를 파괴시켰고 이 때문에 25만∼50만 마리의 바다새와 2천800∼5천 마리의 바다 수달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재난이 발생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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