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오른 재미있는 소식이며 음악, 사진들을 열심히 퍼 나르는 동창이 있다. 며칠 전 이메일 첨부파일에는 “이런 게 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사진과 함께 담겨있었다. 사진은 비석마다 성탄절 화환이 줄지어 놓여있는 알링턴 국립묘지의 설경이었다.
새하얀 눈밭을 배경으로 새빨간 리본을 단 수천 개의 초록색 성탄 화환이 굽이치듯 이어지는 광경을 보며 우선 떠오른 느낌은 “따뜻하다!”였다. 죽은 자들도 등 시릴 것 같은 황량한 겨울 묘지, 그 묘소마다 화환을 바치는 따뜻한 마음들, 화환의 이불 밑에서 포근해할 영령들… 그런 연이은 생각들이 ‘따스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추운 연말에 추운 소식들이 자꾸 터져 나온다. 네브래스카 오마하의 샤핑몰 주차장, 콜로라도의 선교사양성학교와 교회 주차장, 라스베가스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며칠 간격으로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해 10여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쳤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30대 청년이 군인들을 차로 치고 소총과 수류탄 등을 탈취한 사건이 터져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런 한편에서는 원유유출 사고로 시커먼 기름이 겨울바다를 뒤덮으며 지역 어민들의 가슴을 새카맣게 태우고 있다. 먹고 살 희망이 꽁꽁 얼어붙어 버린 매서운 겨울이다.
라스베가스 사건을 제외하면 지난 열흘 사이 한국과 미국에서 터진 총기사건은 딱히 정해진 대상이 없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돈을 위한 강도 사건도 아니고, 원수를 갚는 복수 사건도 아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두른 사건들이다.
총격사건이 연이어 터지자 미국사회에서 당장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총기규제’이다. 하지만 총기규제 한다고 문제의 뿌리가 뽑힐까? 총기규제는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관심 가져야 할 것은 마음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죽고 다칠 희생자들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갖지 못하는 냉혹한 마음,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진짜 문제이다.
콜로라도 사건의 백인 청년도, 강화도 총기탈취 용의자도, 지난 봄 버지니아 텍 참사의 주인공 조승희도 모두 외톨이들이었다.
현대의 삶은 너무 많은 외로운 사람들을 양산해내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긴 근무시간, 장거리 통근시간, 사람 대신 스크린을 보며 일하고 놀고 대화하는 생활방식 등이 사람의 따뜻한 체온을 차단한다.
미국 사회학 리뷰에 몇 달 전 발표된 연구결과를 보면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한명도 없다는 미국 성인이 25%에 달한다. 80년대 중반이후 19년 사이 두 배로 늘어 난 수치이다. 그 추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샤핑을 하고, 마약이나 도박에 손을 대다가 도가 지나쳐 개인이 망가지고,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적 범죄로 연결되는 것이 이 사회의 문제이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성탄화환은 올해로 제16회를 맞는 행사이다. 메인 주 해링턴의 크리스마스 트리회사인 워시스터사의 모릴 워시스터 사장이 혼자 시작했는데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며 돕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팔고 남은 싱싱한 성탄화환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어디에 쓰면 좋을까 생각하던 그에게 국립묘지가 떠올랐다. 12살 때 워싱턴 D.C 여행을 상으로 탄 적이 있는 데 그때 방문한 국립묘지가 그에게는 각별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이후 매년 그는 5,000여개 성탄화환을 기증해 메인부터 버지니아까지 750마일을 수송한다. 올해는 15일 이른 아침 알링턴 국립묘지에 도착해 전국에서 모인 수백명 자원봉사자들이 각 묘소에 바치는 작업을 도왔다. 그렇게 많은 마음들이 모이니 한겨울 국립묘지가 훈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의 서해안도 더 이상 추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매일 수만의 자원 봉사자들이 모여들고 미주한인사회도 성금모금에 나섰다. 절망으로 얼어붙은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차츰 조금씩 녹기 시작할 것이다.
마음에도 온도가 있다. 섭씨 37.5도의 체온을 유지해야 몸이 건강하듯 마음도 적정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면 병이 든다. 추운 연말, 마음의 온도가 너무 떨어진 이웃들이 있다. 관심의 온도계를 들고 이웃의 마음의 온도를 재어보자. 따스한 시선, 따뜻한 관심이 추운 마음들을 녹여줄 것이다. 마음은 마음으로써만 온기를 얻을 수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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