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머리 고지 혈투
■ 한국 군단의 지원능력 부족
군단은 작전 단위로서 사단에 대한 행정 보급의 책임은 없었다. 그렇다고 한국 군단은 작전을 도울 충분한 화력 및 지원부대도 갖지 못한 때이다. 사단장 입장에서는 군단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송요찬 수도사단장이 그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하였다. 결국은 사단장도 방문 못한 사단에 속한 군단 내 최고봉이자 격전을 거듭한 수도고지를 군단 참모장이 방문함으로써 군단과 사단의 원활한 관계가 유지된 기억이 난다.
또한가지 잊지 못할 기억은 이승만 대통령 생신을 위해 얼어붙은 화천 저수지에서 다이나마이트를 이용해 잉어를 낚아 경무대를 방문한 기억이다. 예나 지금이나 상사의 비위를 맞춘다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 한국군의 아버지 밴플리트 장군
내가 군단에 부임할 때는 방어전이 한창일 때며 휴전 협정이 진행될 때였다. 신임 밴플리트 장군은 희랍에서 성공한 사람이다. 그는 방어전에서의 적의 고지를 탈환하는 것으로 중점을 둔 것 같았다. 각 군단으로 하여금 적의 특과점 공격 시범을 만들게 하였으며 각 사단에게 시범을 견학케 하였다. 부임 초라 그랬는지 밴플리트 장군은 자주 군단을 방문하게 되었다. 군이 방어전에 있을 때 사단을 일선에서 교대로 빼내 UTC 훈련이라 해 약 2개월간의 사단 단위 부대 훈련을 시켰다. 이 과정이 한국군으로 하여금 조직된 부대훈련을 넘어 부대의 장비를 점검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군의 발전과 성장이 이 부대훈련과 무관치 않다. 그가 한국군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데는 위의 사정과 관련이 있다. 미국 군사령관 치고는 가장 한국군의 친구가 된 대신 미국 군 상부에게는 포탄 부족을 포함해 많은 불평을 한 사령관으로 알려지고 있는 듯하다.
■ 육군 제 2사단장으로 보임
백선엽 장군이 이종찬 장군의 후임으로 육군 참모총장으로 전임되고 난 후 나는 미 9군단 소속이었던 육군 제 2사단장으로 보직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간 참모역은 하였으나 전선 지휘관의 경력은 처음이었다. 2사단은 한국 9사단이 격전을 치룬 철원 백마고지를 점령하며 초기 사단장으로는 이형근, 이한림, 함병선 장군이었고 미 9군단 부군단장에 보임 전에는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정일권 장군이 지휘하였고 나는 정 장군 다음 사단장인 강문봉 장군과 사단장을 교체하게 되었다. 강문봉 장군은 육군의 작전국장을 오래 지냈으며 전쟁 중의 제 1사단장을 맡은 바 있었고 나와는 잠시이지만 제 2군단의 부군단장과 참모장의 관계에 있었다. 내가 부임한 것은 1953년 5월1일이니 휴전되는 1953년 7월 27일까지 불과 3개월간의 전투 기간이었으나 나의 군인 생활로서는 많은 시련과 함께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주었다.
사단은 중공군 1개 군과 대치해 있었고 1만2,000명의 사단 장병의 생사를 관장하며 구 철원 역을 포함해 광대한 철원 평야가 사단지역 내에 포함돼 있었다. 사단 방어선 후방을 한탄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백마산의 500 능선 북쪽 적의 방어선은 700 능선으로 주간 일선 방문이 적의 포화로 어려울 때이었다.
■ 사단장의 고민
나는 지휘경험이 없던 만 29세의 청년으로 사단 지휘를 위해 고심하였었다. 또한 나는 미 3사단을 우측방으로, 좌측방은 미 1군단의 미 7사단과 경계되며 군단 예비 사단도 미군 사단인 미 9군단 소속으로 연합작전의 복잡성도 이겨내야 했다.
내가 사단장으로 있는 기간은 휴전선을 유리케 하기 위해 적의 공세가 심할 때였다. 나의 관측으로는 휴전이 가까워지면서 미군의 희생을 아끼는 상부의 눈치가 역력하였다. 이러한 실정이 적으로 하여금 유리한 차후의 방어선 선택을 위한 공세의 기회가 되었다. 철원 평야를 수중에 넣기 위해 백마산이 필요했고 백마산을 위해 평소에 소대가 점령하고 있던 미 7사단과의 접경선의 배수진이었던 300미터의 화살머리 고지가 휴전 수일을 앞두고 격전장이 되었다. 전쟁 중 하루 약 300명의 희생과 두 차례에 걸쳐 진지가 적 수중에 들어갔었으나 재탈환되었다. 이 전투에서 확보된 화살머리 고지 는 미 7사단과 백마고지 능선을 확보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 왔다. 사단은 후일 이 전투로 말미암아 부대 표창이 되고 사단장은 한국 정부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는 Legion merit(officer’s degree) 훈장을 희생된 장병을 대신해 받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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