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국어, 한국문화가 좋은 사람들
한국어 클래스의 영원한 우등생 챈 호씨 이야기
1. 이 남자, 미스터 챈 호(Mr. Chen Ho)
챈 호 씨는 중국인이다.
챈 호 씨는 69세다.
챈 호 씨는 은퇴한 엔지니어다.
챈 호 씨는 디 안자 칼리지에서 한국어 클래스를 듣는다.
또, 챈 호 씨는 한창 나이의 젊은 학생들을 가볍게 제끼고 언제나 반수석을 도맡아 한다.
그리고, 챈 호 씨는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있을 때까지 한국어 공부를 놓지 않을 작정이다.
그리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챈 호 씨는 한국, 한국어, 한국문화를 너무나 사랑한다.
챈 호 씨가 디 안자 칼리지(De Anza College) 한국어 클래스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마치 빙하시대를 견디고 깨어난 공룡처럼 길고 긴 여름 방학의 침묵에서 잠을 깬 교내가 수강신청으로 연일 들썩이던 때였으니 2007년 9월, 가을 학기부터가 된다.
신학기의 첫날, L61은 강의실 안팎을 발디딜 틈 없이 꽉꽉 메우고 있던 70여명의 학생들로 분주했다. 선생을 위해 홍해가 갈라지듯 좌우로 나뉘어 터주는 길을 통과해 강의실에 들어선 나는, 맨 앞줄에 허리를 꽂꽂이 세우고 앉아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있는 초로의 남자를 발견했으니(사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초로를 가볍게 넘어선 나이였다), 그가 바로 챈 호씨다.
2. 한국어 강의실에서 만난 챈 호 씨
17-8세의 어린 학생들 틈에 앉아 미소짓고 있는 챈 호 씨로 말하자면 1939년 11월 22일 쓰촨, 챈둥 출신. 1964년 미국으로 이민와, 1971년 유니버시티 오브 피츠버그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마치고, 1969년 결혼하여 얻은 두 자녀가 다 장성하여 손자 손녀들을 보았으니, 챈 호 씨는 이제 정말로 ‘할아버지’다.
실리콘 벨리 컴퓨터 엔지니어링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흥망성쇠의 증인인 챈 호 씨. 탠덤(Tandem), 컴팩(Compac), 에이치 피(HP), 보로(Burrough), 유니백(Univac), 유니시스(Unisys) 등 유수의 하이텍 컴퍼니에서 매니저로, 디렉터로 일하며 실리콘 벨리의 흥망성쇠를 온 몸으로 경험하던 지난 30여년을 뒤로 하고 은퇴한 챈 호 씨는, 그러나, 아직도 쉴 줄을 모른다.
“쓰촨에서 태어났지만, 아모이가 나의 진정한 고향이예요. 부모님들이 아모이 분들이시지요. 중국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자신의 조상이 자리잡아 살던 곳을 진짜 고향, 그러니까 ‘본향’이라고 생각하지요.”
호 씨는 말한다.
“중국에는 56개 민족이 있고, 각각의 민족마다 고유한 제 언어가 있지요. 정부에서 18개 정도의 문자로 통일했지만, 여전히 구어는 각각의 민족마다 다른 방언을 써요. 방언이라 해서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차원의 사투리 수준이 아니고, 완전한 외국어지요. 그런데, 특히 아모이 말은 한국어와 무척 비슷합니다. 한국어 ‘학교’는 아모이 말 ‘학교’와 발음과 의미가 꼭같아요. 이처럼 대부분의 아모이어들이 한국어와 유사관계에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어를 들으면 왠지 친근하고 다정해요. 꼭 아모이 말을 듣는 것 같이 말이지요.”
왜 굳이 한국어냐는 질문에 챈 호씨는 말한다.
사실 그는 언어에 있어서는 전문가급이다. 아모이어, 쓰촨어, 만다린, 칸토니즈, 스페인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까지 7개국어에 능통하다. 언제까지 한국어 강의를 들을 작정이냐는 물음에, “다른 언어들처럼, 한국어를 완전 정복할 때까지”라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챈 호 씨.
우스개 소리로,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저는 텔레비젼을 안봐요.”, “아, 그래도 ‘대장금’은 봤어요. 여러면에서 아모이 문화와 많이 비슷하더군요”라며 활짝 웃는다.
3. 2세들을 위하여
“한국문화는 아름답습니다. 특히 연장자를 존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젊은이들이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은 중국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이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일은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진 사회는 그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 허물어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호 씨의 온화한 얼굴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가득 담겨 있다.
한국인 아내를 위해 진작 한국어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게 아내에게 가장 미안하다는 호 씨의 두 아들도 모두 호 씨처럼 언어에 능하단다.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근본과 뿌리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물론, 아이들이 잘 따라주지는 않아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자신에게 남다른 뿌리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이기보다는 수치나, 이질감, 혹은 거추장스러움으로 여겨지기 쉽지요. 그러나, 부모들이 아이들의 반항 때문에 물러서서는 안돼요. 정신의 뿌리, 본향의 언어가 미래에,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져다 줄 장점들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지요. 정신적인 면, 실제적인 면, 그 어느 면을 위해서라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제 뿌리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는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근래 이민 2세, 심지어 1.5세까지 모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내는 질문에 답한 호 씨에게, “댁의 자녀들은 어떠했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제 아이들도 청소년기엔 거부했었지요. 그러나 저는 확신을 버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우리의 뿌리인 문화와 언어에 대한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았답니다. 지금은 어떠냐구요?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와 하는지 몰라요.” 라며 챈 호 씨가 활짝 웃는다.
한국어 사랑은 아마, 죽을 때까지 갈 것같다고 말하는 챈 호 씨는 클래스 톱을 내놓지 않는다.
클래스 톱의 비결이 뭐냐고 묻자, “열정과 사랑”이란다. 한국, 한국어, 한국문화 에 대한 그의 열정과 사랑이 노구의 그로 하여금 밤잠을 설치며 공부하게 만든다고 말하는 호 씨에게, 한번 쯤, 젊은이들을 위해, 못이기는 척, 톱의 자리를 슬쩍 내놓을 의사는 없는가고 묻자, 그는 껄껄 웃으며 말한다.
“그건 공정치 못한 게임이에요. 게다가 한국인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합니다. 결백하고 정직한 민족이지요.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톱의 자리가 아니라면 한국인은 기뻐하지 않을 거에요. 그러나 누군가 젊은 한국인 학생이 이 톱의 자리를 얼른 빼앗아 가 주기를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인자하게 미소짓는 챈 호 씨, 지각 한 번 해 본적 없으며, 젊은 선생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고, 허리 굽혀 절하는 챈 호 씨, 수업 시간 주의 한 번 흐트리지 않는 챈 호 씨, 반 학생들의 모범이 되는 챈 호 씨는 어쩌면 우리 반에서 가장 마음과 정신이 젊은 학생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정영화 기자> drclara@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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