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둔 한국의 정계는 정신이 헷갈리고 흐리멍덩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그렇게 한 마디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일이 아닌 것 같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몇 가지 면이 발견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우리의 입장이, 미국의 대선 결과와 함께 한국의 대선 과정과 결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각 정당 입후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견 발표와 토론을 거듭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한 방송사가 주최한 입후보자들의 토론회가 열렸다. 그 광경을 보면서 희망의 빛을 보았다. 그것은 토론의 방식과 토론자들의 참가 태도에 눈에 뜨이는 성장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동안의 소위 성장통 영역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주었다.
첫째, 토론 방식이 기계적이고 냉철하였다. 다음으로 참가자들이 대체로 감정을 제어하는 노력이 보였고, 질문에 대한 답을 간략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토론’이나 ‘토의’는 여러 사람이 참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떤 문제를 두고 여러 사람이 의견을 말하여 옳고 그름을 따져 논의하는 것이 ‘토론’이다. 이와 비슷한 말인 ‘토의’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내놓고 검토하고 의논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입후보자들의 이번 모임은 토론회가 된다.
토론회의 성공 여하는 첫째, 사회자의 선택이다. 그는 사람이면서 기계적이어야 한다. 개인의 감정 노출은 금물이다. 둘째는 진행 방법의 연구이다. 참가자 누구에게나 불이익을 주어서는 안되고,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질문과 방법을 취해야 한다. 또한 제한된 시간 내에 최대한의 수확을 거둬들여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의견을 간략하게 알릴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하고 전달 순위를 정해야 한다. 반대되는 의견이나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이 나왔을 경우, 이를 물리칠 수 있거나 보충 설명할 수 있는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참가자들에게 요구되는 조건은 각자의 감정 처리이다. 감정에 치우치면 토론의 패배자가 되고 만다. 각자의 신념이 굳더라도 이성을 잃으면 의견 전달에 지장을 준다. 또한 상대방의 의견에 일격을 가하고 싶더라도, 쇠망치를 피하고 솜방망이를 사용해야 한다.
토론장은 의견의 다툼장이지 결코 말의 폭력이나 완력을 휘두르는 자리는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대선 입후보자들의 토론을 시청하면서 거의 만족하였다. 토론 문화의 성장을 인정할 수 있는 기쁨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해방 전까지 학생들의 책상이 교단을 향해 나란히 줄을 맞춰 있었다. 해방이 되어 미국 교육사절단이 파견되어 한국에 들어오자, 책상을 그룹으로 모아놓으라고 하였다. 모두 의아스러움에 휩싸였다.
그들은 교육이 교사가 학생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잠재력을 뽑아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려면 그들끼리 많은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모든 것이 생소한 제안이었지만 그들의 말을 따르다 보니 차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한국 학생들의 토론문화는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대학에서 어떤 주제에 대한 논문을 쓰든지, 그룹을 만들어서 주제와 관련된 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라고 하면, 아직도 논문 제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룹 활동이 많은 토론을 거쳐야 하기 때문으로 안다. 이것은 토론에 약함을 말한다.
토론에 강하게 되려면 그 기회가 많아야 한다. 토론의 의제는 처음부터 큰 것을 택할 필요가 없다. 생활 주변에서 간단한 것을 택하는 것이 좋다. 토론을 하는 상대는 정해진 사람을 택할 것 없이 누구나 그 대상이 된다. 형제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소그룹에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재미있게 서로 의견을 내놓고 보다 나은 결론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 때마다 꼭 어느 결론에 도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토론에 강한 인물을 인터뷰한 기자는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이 모이는 저녁 식사 시간마다 토론하는 것이 습관으로 되어 있었지요”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 모여서 큰 힘을 기르는 진리가 여기에 있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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