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화장품 사는데 걸리는 시간은 남자들이 골프장 9홀을 도는 시간보다 더 길다. 왜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가를 메이시 백화점 랑콤 화장품 코너에서 깨달았다. 선물용으로 적당한 스킨로션을 달라고 했더니 판매원은 쓰는 사람의 피부가 건성인지 유성인지, 연령층은, 피부색은, 파운데이션의 종류는, 낮에 바를 것인지 저녁에 쓸 것인지를 시작으로 끝없는 질문공세를 하는 것이었다.
조금 더 있으면 몸무게는, 키는, 심지어 사는 동네의 날씨는 어떤가 하고 물어볼 기세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자세히 알아야 하는지를 묻자 “아무리 비싼 명품 화장품이라도 개개인의 피부 상태에 맞지 않으면 효과도 못 보고 돈만 낭비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피부와 화장품처럼 서로 궁합이 맞지 않으면 시간, 돈, 정력 낭비를 하며 겉돌기에 그친다는 진리가 결혼과 대학 진학에도 적용된다. 프랑스의 극작가 아르망 사라클이 “사람은 판단실수로 결혼하고, 인내부족으로 이혼하고, 기억력이 없어 재혼한다”고 익살스럽게 경고했지만, 막상 배우자를 찾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판단력, 인내력, 기억력을 살펴서 어울리는 상대를 찾기 보다는 거의 완벽한 상대를 찾아 헤매는 게 보통이다. 자신이 먼저 올바른 짝으로 준비되기도 전에 완벽한 상대와 산다고 해서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까.
대학 진학도 마찬가지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은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 수준이 아닌데도 귀에 익은 유명 대학만 고집한다. “들어보지도 못한 대학은 지원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유명인이나 영화배우, 탤런트, 가수, 미인대회 입상자, 소문난 재벌가 자녀가 아니면 결혼 상대자로 고려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별로 다를 바 없다.
문제는 이쪽은 원하지만 과연 그쪽이 원하느냐에 있다. “고교 전체 평점이 4.0에 가깝고 SAT 점수가 2,200이 넘으니 나는 얼마든지 명문대에 갈 수 있다”고 자신감에 넘쳐 있는 학생들을 흔히 본다. 과연 그럴까.
명문대 지원에서 그 정도 점수는 길에 흩어져 있는 낙엽보다 더 흔하다.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전교 일등이라서 명문대는 문제없다”고 자랑하는 부모 또한 적지 않다. 아이가 공부 잘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전역에 고등학교가 2만8,000개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설사 점수가 되어서 유명대학에 지원한다고 하자. 막상 “그 대학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학교를 왜 지원하기를 원하는가”를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은 “그냥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명문이라고 들어서” “유에스&월드 리포트의 대학순위를 보아서 안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대학의 인터뷰 관계자들도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더러 지원하는 대학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학생을 찾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 지원서 에세이에 자주 등장하는 “왜 우리 학교에 오려고 하는가”
“와서는 무엇을 공헌할 수 있나”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도 하나 같이 “명문
대학이고 훌륭한 교수가 있어서 학업에 열중할 수 있다”로 대답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자신들의 학교가 좋고 우수한 교수진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 질문은 지원자가 우리 대학에 대해 얼마나 어떻게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특히 어떤 점에서 궁합이 맞다고 생각하는가를 나열해 보라는 것이다. 틀에 박힌 대답과 수박 겉핥기식으로 쓰여진 에세이는 초등학교 수준 밖에 안 되는데 과연 준비된 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한심한 일은, 가고 싶지도 않은 대학에 안정권이라서, 또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요행수를 바라며 지원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학교 평점, 표준시험 점수, 교내외 활동, 추천서 등은 ‘겉궁합’에 해당되고 에세이를 통한 자아표현 능력, 그리고 학생의 태도, 교양, 문화적 수준은 속을 파보아야 나오는 ‘속궁합’에 해당된다. 지원대학과 겉궁합, 그리고 속궁합이 같이 맞아야 ‘찰떡궁합’이다. “지원 대학의 분위기는 (보수적 혹은 진보적인) 나와 어울릴까. 나에게 맞는 수업방식은 토론식인가 강의식인가. 교수와 함께 연구할 기회는” 등의 질문으로 자신의 겉과 속이 지원대학과 어울리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올해는 330만명의 고교 졸업자가 나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입학 경쟁률이 예상된다. 걸맞지 않는 상대를 쫓아 시간, 돈, 정력 낭비를 하면서 헤매는 것을 막기 위해 냉정해야 한다. 아니면 메이시에 가서 랑콤 판매원을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다니엘 홍
C2 에듀케이션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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