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출신·병원재벌 딸 사칭 ‘발칙한 사기꾼’
아버지(주창학)는 서울농대(현 서울대 생명과학대) 임학과 교수를 지냈다. 명예만 먹고사는 월급쟁이 교수가 아니었다. ‘돈이 되는 임학’을 했다. 한국의 산림정책에 깊숙이 간여했다. 그는 1992년-1993년에는 시카고 일리노이주립대(UIC) 임학과 교환교수로 실력발휘를 했다.
적어도 돈에 관해서라면 아버지보다 어머니(양인자)가 훨씬 더했다. 저명 내과전문 의학박사인 병원재벌이었다. 서울(양인자내과)과 대전(현대병원)에서 병원을 운영했다. 서울의 병원은 원래 강남에 있었으나 구로구 독산동으로 옮겼다. 한양대의대 외래교수로도 출강했다.
주창학 교수-양인자 박사 부부는 지훈-지인 남매를 마냥 품안에 끼고 ‘온실 속 화초’로 키우지 않았다. 어렸을 때 외국에 내보내 공부를 시키는 등 일찌감치 국제감각과 자생력을 키워주려 애썼다. 아들 주지훈씨는 현재 영국 런던에서 굴지의 다국적 기업에 다닌다. 초등학교 때 독일에서 유학했고, UIC 교환교수로 온 아버지를 따라 중고교 때 미국물을 먹은 1975년생 딸 주지인씨는 귀국 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 1999년 8월에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두뇌들이 모인 한국개발원(KDI)에 취직한 주지인씨는 거기서도 인정을 받았다.
2005년 1월 하순 어느 날 저녁, 더블린 플레젠튼 셰라톤호텔 1층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이지역 S목사에게 ‘기막힌 사기를 당한 기막힌 얘기’를 하는 동안 울분과 흥분, 원망과 절망이 뒤섞여 목소리가 수시로 올라갔다 갈라졌다 하면서도 주지인씨는 가족 얘기를 할 때면 적이 차분해지곤 했다.?
팔로알토에 사는 외삼촌도 의사에요.주씨는 왜 외삼촌댁 놔두고 겉돌다 목사에게 거액(주씨 계산으로 111만5,000달러) 사기를 당하게 됐을까. 처음 석달(2004년 2, 3, 4월)인가 거기서 살았죠. 그런데 숙모하고 이혼을 하게 돼서 있기가 좀 그래서…. 지금 이혼수속을 밟는 중이에요. 끝나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신다나 봐요, 이것저것 골치 아프다고.
외삼촌댁에서 나온 주지인씨는 방황했다. 어찌어찌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한인2세 K목사를 만나 데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좀체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2004년 1월, 게다가 결혼을 앞두고, 옷가지 등이 든 가방 하나만 들고 LA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 사연을 얘기하면서 주지인씨는 눈물을 글썽거리기도 했다. 낳아주신 엄마가 따로 있다는 것을 스무살 넘어서 알게 됐어요…그래도 나는 길러주신 엄마를 더 엄마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엄마(친모)가 결혼식만큼은 내가 손을 잡고 해야겠다고 해서…엄마랑 싸우고 결혼이고 뭐고…
주지인씨는 2006년 6월말-7월초 몬트레이쪽에 있는 B기도원에 들어갔다. S목사 부부를 만난 것은 그곳에서였다. 주씨는 S사모는 밤새 얘기를 나눴다. 다음날, S목사 부부는 주씨에게 숙모집에 데려다주겠다며 짐을 챙기라고 했다. 주씨는 엉거주춤 따라나섰다. 이들이 간 곳은 팔로알토가 아니라 헤이워드였다. 시간이 꽤 흘러버렸다.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면서 어제 못다한 얘기를 하자. S사모의 제안에 차가 없는 주씨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실은, 차가 있더라도 외삼촌댁에는 가고싶지 않았다. 자다 일어나 S사모와 동이 트도록 얘기를 했다. 이틀동안에 콱 막힌 주씨의 응어리가 어지간히 풀렸다. 주씨는 목사집과 목사의 동생집에서 6주가량 머물게 됐다.
그런데 이 인간들(목사 부부)이 엄마랑 전화해서 우리집 돈이 많다는 걸 알아본 거에요. 독일에 있을 때 가디언한테 콘도 사라고 43만달러를 나 몰래 보내준 얘기도 그랬는데…
주씨와 주씨의 부모는 목사 부부의 속셈도 모르고 금방 뭉칫돈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주씨의 생활비는 물론이고, “식탁도 잘 안들어가는 조그만 아파트에서, 주변에 인도사람 중국사람 많은데서 살고 있다니 지인이한테 콘도라도 하나 사주라고, “기도원 만드는 데 보태라고” 등등 명목은 다양했다. 2004년 7월27일 40만달러, 8월23일 4만5,000달러, 9월7일 10만달러와 42만달러, 그리고 날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사이에 현금 3만달러가 직접 전달됐다. 주씨의 외숙모가 양 박사로 받았다가 쓰고남은 37만달러 수표도 전달됐다.
송금은 서울 논현동에 있는 명진기업 명의로, 수취인은 S사모가 대표로 돼 있는 유령회사 에버그린. 이는 주씨의 부모가 그동안 외환을 한도액 이상 보낸 터라 양 박사가 잘 아는 명진기업과 무역을 하는 것처럼 꾸민 것이었다. 에버그린 계좌는 북가주가 아니라 LA 한인타운 N은행 윌셔지점에 개설됐다. 송금확인증과 영수증 등 증빙자료도 갖춰져 있었다, S목사 등의 사인도 선명하게.
(S목사 부부가) 다 해먹은 것은 아니에요. 8월16일경에 22만달러를 받았어요. 그 돈에서도 (목사의) 둘째아들 등록금 낼 때 3,000불인가 보태주고, (목사 부부에게) 3박4일 알래스카 크루즈여행을 보내주기도 하고 그랬지만. 주씨가 사기당했다는 111만5,000달러는 총 송금액(+전달액) 133만5,000달러에서 22만달러를 뺀 금액이었다.
“기사 써주시는 거죠? 내일? 모레?” 주씨는 그 울분의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중간중간 기사화 약속을 받아내려 했다. “아이 그까짓 100만불, 그거 없어도 살아요. 다 가지세요.” 인터뷰 초반에는 “그 돈 절반 가지라”고 선심을 쓰던 그는 기자가 딱부러지게 기사화 약속을 해주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는지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설 즈음 성공보수 베팅금액을 화끈하게 늘렸다.
“이봐 당신 속고 있어!”
다음날 오전, 기자의 전화를 받은 S목사는 버럭 화부터 냈다. 주지인의 ‘주’자만 들어도 열이 받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취재는 취재였다.
몇분간 큰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목사는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 애한테 악령이 들었어요. 그 애가 천의 목소리를 갖고 있어요, 연기력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신분증 한번 보여달라 그래봐요.”
얼마 후 주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S목사와 통화를 했다는 기자의 말에 주씨는 특유의 속사포 말투로 자신의 확신에 찬 짐작을 쏟아냈다. “내가 악령이 들었다고 안그래요? 연기력이 좋다고 신분증 보라고 안그래요?” 쪽집게였다. “거 봐요, 그 인간이 그렇다니까.”
주장은 180도 달랐지만 기자의 헷갈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런 사건 수사의 첫 단추가 고소고발인 조사이듯, 취재의 첫걸음은 제보자 취재-. 기자는 서울 시간에 맞춰 주지인 패밀리 취재에 들어갔다.
“그런 사람 없는데요.” 서울대 경영학과 조교의 대답이었다. 그럴 리야 없지만 만의 하나 주씨가 헷갈렸을 가능성, 기자가 잘못 들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후 학번을 다 훑었다. 역시 없었다. “그런 교수 없는데요.” 서울대 생명과학대(농대의 후신) 전현직을 통틀어 주창학 교수는 없었다. 양인자 박사 역시 유령이었다. 인터넷 검색어에 양인자를 찍으면 작사가 양인자, 소설가 양인자, 그밖의 양인자들 투성이였다. 독산동 양인자 내과도 없고, 현대병원은 흔한 이름이라 있을 법한데도 대전에도 유성 등 대전 인근에도 없었다.
기자는 취재방향은 주지인을 겨냥하고 있었다. 속도 모르고 주씨는 거의 매일같이 전화를 해 보챘다. 그럴싸한 이유들이 꼭 붙었다. “엄마가 돈 포기하고 들어오라고 난리”라고 울먹이는가 하면 “호텔비를 더 안보내주신다니 나가야 된다, 그러면 진짜 (서울로) 가야 된다, 그런 나쁜 인간을 놔두면 그게 기자냐” 등등. 기자는 계속 선관위 등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다 어머니와의 통화를 요구했다. 주씨의 순발력은 대단했다. “000, 000 이런 새끼들이 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한테 돈 욹어먹으려고 했다”면서 “엄마는 지금 홧병이 날 지경이어서 기도원에 가 계신다”고 했다. 기자는 어머니더러 기자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역제의를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회사에 출근하니, 책상 위에 메모가 있었다. ‘주지인 엄마 양인자 전화 017-XXX-XXXX’ 동료직원이 받아놓은 것이었다. 기자는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그날 다시 주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통화불발 사실을 전했다. “엄마가 몇번이나 했는데 안받아서 도로 기도원에 들어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주씨의 기사화 주문, 기자의 신원확인 요구가 엇갈리면서 시일은 흘렀다. 주씨는 회사로 찾아와 울먹이며 부탁하기도 했다. 주씨는 집요했다. 2월 중순에는 “엄마가 힘을 써서 현대자동차 딜러십을 받게 됐다”며 “현대자동차 임원들이 오는데 연결해줄테니 나오라”고 떠보기도 했다. 주씨는 기자가 서울에 연락해 주변신상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나는 언론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기자의 말에 착안을 했는지 “신문사 얼마 있으면 살 수 있냐, 엄마한테 말해서 하나 차려주겠다”는 말도 했다. 한번은 양 박사가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성문감식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는 기자는 그게 주지인의 전화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주지인은 능청스럽게 한시간쯤 뒤 전화를 해 엄마 전화 받았냐고 확인했다. 웃음이 나왔지만 속아주는 척 해줄 수밖에.
3월10일 낮, SF재팬타운. 미야코호텔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SF분회 출범식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J일보 L기자가 “주지인과 함께 있다”고 알려왔다. 처음 한동안 따로 취재를 하다 주지인이 사기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합동감시를 하던 중이었다. 주씨가 그 자리에 나온 것은 ‘중대한 결단’이었다. 기자를 코너에 몰기 위한 것이었다. 더이상 사정해봤자 소용없다고 판단했은지 주씨는 기사를 왜 안쓰냐고 따지듯 물었다. 기자는 취재결과를 내비쳤다. 주 교수 가짜, 양 박사 가짜, 병원 가짜 등등. 주씨의 순발력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 돈 한인회 전달했어요?” “무슨 돈?” “저번에 샌프란시스코 나왔다 갈 때 차 안에서 한인회 주라고 1만달러 줬잖아요, 100불짜리로 봉투에 담아서.”
차가 없는 주씨를 태우고 시내에 나왔다 플레젠튼 숙소로 바래다주기 위해 베이브리지 위를 달리고 있을 때, 김홍익 당시 한인회장이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해 트레저 아일랜드에서 차를 돌린 적이 있었다. 만난 곳은 재팬타운 데니스. 김 회장에게 주씨를 인사시키면서 “한인회 요새 돈없어 죽겠다는데 여기다 후원금이나 한 만달러 내시지”라고 한 것을 기막히게 활용했다. 기자를 당황하게 한 뒤 L기자를 자극하고 J일보와 게임을 하려는 것으로 판단됐다. 기자는 “그래? 결국 드러내는구만” “그렇게 피해를 당했으면 당연히 신문에 내줘야지”라며 카메라를 꺼냈다. 그 순간, 주씨는 웃옷을 벗듯이 얼굴을 가리고는 잽싸게 도망쳐버렸다. 그뒤 주씨는 더이상 기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L기자와 한번 더 만났으나 L기자도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연락이 끊겼다. 지금 주씨는 어디에서 누구룰 어떤 사기를 치고 있을까. 아니 그보다는 주지인은 진짜 주지인일까?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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