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해를 보내는 이맘때가 되면 나이를 먹어가는 필자에게도 기다려지는 산타클로즈가 있다.
캄캄한 밤, 굴뚝으로 들어와 머리맡에 선물을 놓고 가던 그 옛날의 산타 할아버지처럼,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용케도 살짝 선물을 놓고 가고는 전화도 받지 않는 우리 산타 할아버지는 그렇게 십년하고도 몇 해가 지나도록 잊지 않고 찾아온다.
엘리베이터가 평소 기다릴 때는 잘 오지도 않던데 어떻게 뛰어 나가보면 연기처럼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하도 안타까운 마음에 프론트의 직원에게 신신당부를 하여 작은 셔츠를 준비하여 드렸더니 처음으로 전화해서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호통을 치셨다.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게 유난스러웠던 젊은 오피서 시절, 어려운 문제로 에스크로에 찾아오셨던 바이어 Y선생님은 사람을 잘 믿지 못 하리 만큼 많은 고초를 겪은 몹시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기억된다. 친구에 대한 배신감, 서류를 위조하여 재산을 가로챈 동업자에 대한 허탈감으로 누가 보아도 가시 돋친 모습으로 직원들과 마찰을 겪고 있었다. 그래도 선배랍시고 팔 걷어붙이고 내키지 않는 파일을 넘겨받긴 하였는데 장황히 설명하는 Y선생님의 긴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이 부담스러워 후회막급이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성의껏 말씀을 경청하고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며 도와드렸다.
감사하게도 필자의 도움으로 일이 잘 마무리되고 어려운 일들이 하나씩 해결되면서 Y선생님의 산타 할아버지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직원들에게 ‘마음이 담긴 서비스’를 늘 강조하는 필자는 그것을 일터의 신조로 삼고 있다. 내 집의 서류를 다루는 마음으로, 내 재산이 달린 일처럼, 나의 가족이 연관된 에스크로라는 생각을 하면 관심과 애정이 각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히 대충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수를 하지 않으려 ‘보고 또 보고’ 애정을 담은 에스크로가 될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그런 오피서의 모습을 손님이 먼저 간파한다는 것이다.
내 일처럼 섬세하게 신경을 써주는 우리 변호사나 가족처럼 자상하게 지도해 주는 우리 CPA, 자신의 재산처럼 정확하게 서류를 챙겨주는 에스크로 오피서와 누구나 가까이 하고 싶어 한다.
연말이면 이렇듯 좋은 관계를 원하는 분들로 사무실은 인정이 차고도 넘친다. 1년 내내 마셔도 남을 만큼 와인이 들어오고, 화장품과 건강 제품에 살림살이까지 종류가 많지만 기억에 남는 선물은 화려하고 세련된 포장의 배달된 선물보다 인정이 넘치고 마음이 듬뿍 담긴 검정 비닐 백에 담긴 훈훈한 선물이 압권이다.
멋쩍은 모습으로 혹은 부끄러워서 불쑥 내밀고 가는 Y선생님의 선물 안에는 탱글탱글한 알밤이 가득할 때도 있고 갓 캐어 흙냄새가 풀풀 나는 고구마가 들어 있는 때도 있다. 한 해에는 알 크기가 고르지 않은 상품가치 없는 사과가 잔뜩 들어 있었다. 보기에 썩 탐스럽지 않아 직원들 다 나눠주고 몇 개집에 갖다 먹어보니 “아뿔싸 실수!” 세상에서 먹어 본 진짜 맛있는 사과였다.
후회막급이었으나 먹을 것 나눠주고 도로 달랠 수도 없고, 다음부터는 한 알도 나눠 먹지 않아 얌체소리를 들어도 각오하고 산다. 순 유기농으로 키운 사과로 달고 육질도 과자처럼 바삭 바삭….
어느 해인가는 옥수수를 자루로 가져다줘서 하는 수 없이 냉장고 탓으로 나눠 먹긴 했지만 ‘슈가 콘’의 맛을 잊지 못한다.
농사가 직업이 아닌 Y선생님이 어떻게 기막힌 것을 구해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수고하는 마음을 알고도 남음이어서 그 사랑에 일 년을 버티는 것 같다.
오랜 고객이신 O선생님은 뒷마당에서 재배한 상추랑 깻잎을 잔뜩 따다 주기도 한다. C부동산 회사의 사장님이신 K여사님은 손수 구우신 따끈한 과자를 한 소쿠리 놓고 간다.
그 사랑과 정에 가슴이 벅차오르지만 감히 그에 어울릴 만한 보답할 선물을 구할 수가 없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먹을 것이 아니더라도 또 물건이 아닐 지라도 만지고 만져서 끝이 너덜너덜해지고 때가 꼬깃꼬깃 묻은 카드에 담긴 메시지는 하루가 너무 행복하다.
“답답했을 텐데 자상하게 도와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가족이랑 꼭 식사하러 내려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제이권<프리마 에스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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