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통령’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듬직한 대통령’ … 한국의 대선 포스터에 나온 선전문구들이다. 선거까지 앞으로 2주 반, 후보들은 이런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겠다는 의지이다.
정동영 후보는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좋은 대통령’, 이명박 후보는 ‘국민 여러분 성공’ 시키는 ‘경제 대통령’, 이회창 후보는 ‘반듯한 대한민국’ 만드는 ‘듬직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열띤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선거철이 되면 못 보던 구경들을 많이 한다. 평소에는 옷깃 스칠 인연도 없을 재래시장 영세 상인들에게 후보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집안에 냄비가 어디 있는 지도 모를 후보가 요리를 한다며 조리사 흉내를 내고, 말 한번 붙이기 어렵게 근엄한 후보가 생전 처음 보는 아이를 안고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것 따위이다. 노년의 후보가 새파랗게 젊은 연예인들과 춤을 추느라 ‘망가지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지경이다.
사회 계층으로 볼 때 최상층의 부류가 느닷없이 바닥으로 내려와 ‘나도 보통사람’이라고 외치는 변신이 선거운동이다. 사회 저변층과의 동류의식을 불러일으키려는 ‘이미지 작전’인 데, 목적은 물론 이들의 ‘표’이다. 망신은 잠깐이고 권력은 오래라는 생각일까, 체면·권위 다 내버린 듯 허허 거리는 후보들을 보노라면 “저렇게 까지 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경우 선거만 끝나면 사라질 모습들이다. 지금도 십중팔구 후보들은 유세장을 떠나는 순간, 표정이 싹 바뀌며 본래의 권위적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쇼를 끝내고 분장을 지우는 배우들처럼.
선거전이 이미지 싸움이 된지는 오래 되었다. 복잡하게 숫자 나열하고 통계 제시하기보다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여러 선거에서 증명되었다.
‘이미지’로 한이 맺힌 대표적 후보를 들자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꼽힌다. 1960년 대통령 선거전 당시 TV토론으로 닉슨이 참패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러잖아도 외모가 처지는 닉슨은 토론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어딘가에 세게 부딪쳤다고 한다. 아픔을 참느라 표정이 구겨진 못 생긴 닉슨과 훤칠한 미남 후보 케네디 - 유권자들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쏠렸을 지는 불문가지이다.
당시 TV가 아니라 래디오로 토론이 진행되었다면 닉슨이 이겼을 것으로 여러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그럴 듯해 보이는 이미지가 표심의 향방을 바꾼 것이었다.
이미지 전략이 먹힌다는 것은 우리가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말과 통한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광고업계에는 클로드 홉킨스라는 광고의 귀재가 있었다. 미술에 피카소, 로큰롤에 엘비스가 있다면 광고에는 홉킨스가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그의 성공비결은 “사람들은 양떼와 같다”는 깨달음이었다. 사람들이 꽤 냉정하게 사물을 판단할 것 같지만 사실은 대중적 흐름에 쉽게 휩쓸린다는 것이다. 스스로 가치판단을 못하고 누군가 제시해주는 정보, 이미지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유권자들이 후보를 지지하는 데도 ‘양떼’ 현상이 있다. 이번 한국 대선은 특히 ‘떼’로 갈라지는 현상이 심하다. 노무현 정부로 대표되는 좌파와 그 반대쪽에 선 우파이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 BBK 사건 수사 등 안팎으로 밀어닥친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유지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쪽과 저쪽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일찌감치 구축해둔 ‘경제 지도자’ 이미지가 두고두고 ‘효자’인 것은 물론이다.
‘이미지’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미국 대통령은 닉슨이었다. 이미지로 고배를 마신 후 그는 전문팀을 구성해 대외 이미지를 철저히 관리했다. 그 결과 그는 8년 후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실체와 대외용 이미지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었는지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누구 못지않게 이미지 캠페인으로 덕을 본 사람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한국민들의 실망은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거리와 상관이 있다. 이미지의 연막을 걷어내는 것은 유권자들이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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