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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reme love is the love of God.
The love of God is the only love that exists.
지고[至高]의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이다.
신애[神愛]야말로 유일무이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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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에 대한 헌신적 사랑을 근간으로 하는 ‘박티요가’의
헌장입니다. ‘Bhakti Yoga’는 흔히 신앙요가 또는 헌신요가
등으로 번역되는 ‘그저 사랑으로 사무치는’ 요가입니다.
’요가’는 나와 그 분이 하나임을 기억하는 길입니다.
따로 합일[合一]을 추구할 것도 없이, 이미 나와 그 분이
합일되어 있음을 늘 기억하는 수행이 요가입니다.
그같은 ‘신아일여’[神我一如]의 경지를 단단히 견지하며,
오로지 신을 향한 애타는 사랑만으로 매진하는 수행을 일컬어
’박티요가’라 합니다. 그렇게 박티요가의 길을 사무치게 걷는
사람은 ‘Bhakta’ [박타]라 하죠. 박타의 가슴 속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사무쳐, 세상이 온통 신의 현현이요 그저 모든 게
뜨거운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박타의 여정을
’사랑의 구도’라 부르기도 합니다.
오로지 사랑을 통해 신과 나를 ‘동시에’ 실현하는 수행이
박티요가입니다. God -Realization IS Self-Realization!
신의 실현이 곧 참나의 실현임을 확철하게 깨우쳐, 알고 행하는
참사랑의 길이 박티요가입니다. ‘나를 위한’ 깨달음이 ‘신을 향한’
사랑 뒷전으로 물러 앉는 몰아와 겸허의 헌신이 바로 박타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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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reme love is the love of God.
The love of God is the only love that exists.
지고[至高]의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이다.
신애[神愛]야말로 유일무이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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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 밤, 홍수로 넘쳐 나는 강을 건너는 학식 높은 선비가 한 분
있었답니다. 배움은 적으나 나이 지긋한 뱃사공이 열심히 노를 저어
저편 기슭을 향해 나아 갑니다. 물끄러미 사공을 쳐다 보던 선비가
묻습니다. 철학을 공부해 본 적이 있으신가? 멋 적은 얼굴로 선비의
눈을 피하던 뱃사공이 나직하게 말합니다. 저 같은 늙은이에게 어찌
그런 공부가 있겠소이까, 나으리. 그러자 선비가 혀를 끌끌 차며
말합니다. 귀한 인생, 참으로 헛 살았구려.
잠시 후 선비가 또 묻습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종교를 공부해 본
적은 있으신가? 당찮은 말씀이외다. 한 평생 배나 저으며 이렇게
살아온 늙은이가 그런 데 무슨 관심이 있겠소이까. 그러자 저윽이
한심하단 표정으로 선비가 탄식합니다. 아까운 인생, 참으로 헛
살았구려.
마침 그 때, 말없이 노를 젓는 뱃사공 어깨 너머로 강풍이
몇 차례 몰아 치더니 느닷없이 배가 뒤집히는 사태가 벌어지고...
물에 빠져 허덕이는 선비를 향해 고함 지르는 뱃사공, 헤엄치는
공부는 해 두셨는지요? 아니, 난 헤엄 칠 줄 모르는 데, 헉헉,
사람 살려...! 그 때, 이미 저 쪽 강 기슭에 헤엄쳐 도착한 사공이
선비를 향해 외칩니다. 귀한 인생, 참으로 헛 살았구려!
타산지석입니다. 여기 저기 귀동냥 한 지혜로 참나를 아는 듯
고개를 쳐 들고 삽니다. 부족한 체험을 선 지식들의 깨달음으로
메운다고 내 삶이 크게 변하지 않음을 압니다. 독선과 편협에 의지해
오로지 한 길을 걷는 사람들을 폄하한다고, 내 갈 길이 순탄해지지
않음도 압니다. 결국 배가 뒤집히면, 헤엄치지 못하는 내 안의
선비를 구제할 길은 오로지 ‘박티’임을 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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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reme love is the love of God.
The love of God is the only love that exists.
지고[至高]의 사랑은 신에 대한 사랑이다.
신애[神愛]야말로 유일무이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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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신애[神愛]로 거의 신열[神悅]에 떠는 경지를 박티요가의
산 꼭대기라 합니다. 신에 취해 거의 사무친 상태 - 신을 사랑하는
나마저 탈각된, 신도 없고 나도 없고 그저 ‘사랑’만 남은 경지를 박티의
절정이라 합니다. 사랑하는 나도, 깨달은 나도, 그리고 이런 저런
나를 아는 ‘그 나’마저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신을 향한 사무치는
사랑만이 덩그렇게 남은 그 신열[神悅] - ‘Divine Ecstasy’ 디바인
엑스터씨라던가요.
아씨시의 성자 프란시스코는 그 같은 신열에 취해 결국 스스로
성흔(聖痕)을 겪게 됩니다. 많은 크리스천 성인들이 그러했듯, 수 많은
박티요기들도 사랑하는 자와 사랑 받는 자가 모두 사라진 ‘그저
사랑일 뿐’의 경지에서 말을 넘는 기쁨과 환희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참나 실현과 깨달음이라는 아상마저 철저히 뿌리 뽑혀진 헌신과
신앙의 박티요가. 어느 독실한 크리스천 친구 얘기가 생각 납니다.
그저 예수 한 분 믿고 따르면 될 일을! 절실하면 통한다는 얘기겠죠.
“All expressions of love are manifestations of this supreme love.”
다른 형태의 모든 사랑이란 바로 이 드높은 사랑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산 정상은 하나로되,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입니다. 하지만, 한 눈 팔지
말고 한 길로 꾸준히 올라야 결국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여러 우물
파다 보면 결국 한 우물도 얻지 못합니다.
지고의 사랑은 신을 향한 사랑일 뿐임을 굳게 믿고 걷는 ‘박티요가’의 길,
많은 선지자들이 이 길을 걸었음을 기억합니다. 지극한 예수님 사랑으로
’스티그마타’ [stigmata]를 경험하던 여러 카톨릭 성인들이 새삼 뜻 깊게
기려지는 달 밝은 가을 밤입니다.
OM~
필자의 다른 ‘가슴 여는’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로 배우는 삶의 지혜]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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