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浿水(패수)는 연나라와 조선의 경계였다. 또한 연나라가 한나라에 멸망된 뒤에는 패수가 한나라와 조선(고조선)의 경계였다. 그리고 한나라에서는 조선을 치기 위해서 제나라 지역, 즉 산동반도 지역에서 발해로 배를 띄워야 했으며, 요동을 지나 조선의 수도로 갔다.”
설명은 이러합니다. 발해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의 바다입니다. 그런데 산동반도에서 발해에 배를 띄웠다면 그 목적지가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 즉 반도가 아닌 대륙의 어느 지점이었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반도의 어느 지점이었다면 황해에 배를 띄웠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연나라 또는 한나라와의 경계였다는 패수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다는 설명입니다. 결코 패수가 한반도 내에 있는 강으로 설정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패수의 위치가 이러하다면 광개토왕 시대의 백제와의 누차에 걸쳐 전쟁을 치렀던 패수가 예성강을 비롯한 한반도 내의 강이 아니며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빼앗은 땅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패수는 漢水(한수)보다 북쪽에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한수가 곧 河水(하수, 황하)이며 백제의 첫 도읍지인 河南(하남)은 하수 남쪽, 백제가 개척한 진평군은 하수 남쪽 산동 반도에, 요서군은 하북 지역에 있었다는 결론입니다.
광개토대왕을 좀더 설명하자면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거를 수가 없습니다. 다시 고구려 실록을 보겠습니다.
“진은 349년에 저족의 추장 부흥이 건립한 국가이며 초기에는 관중을 근거지로 삼았다가 부흥의 아들 부건 때에 도읍을 장안으로 정했다. 그 후 부생이 뒤를 이었으나 폭정을 일삼다가 부건의 조카 부견에게 제거되었으며 부견은 한족 왕맹을 재상으로 세워 진을 강국으로 건설한다. 연(전연)을 멸망시키고 동진의 익주를 탈취하고 서쪽으로는 구자와 양(전경), 북쪽으로는 대국 등의 군웅할거 세력을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하였다.”
이렇게 진의 성장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을 때 고구려는 점차 쇄락해가고 있는 연나라의 영역으로 진출할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그런 때에 남쪽에서 또 하나의 신진세력이 북진하고 있었으니 곧 백제입니다.
“백제는 5호16국 시대가 전개되고 서진이 몰락하여 화북지역의 주인이 사라진 틈을 노려, 제8대 고이왕(서기 234년) 대에 형성한 대륙영토를 기반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었다. 백제는 이미 건국 초부터 산동반도 주변에 근거지를 형성한 바 있으나 고구려와 후한 세력에 밀려 근거지를 마한이 지배하고 있던 한반도로 옮겼다. 하지만 백제는 낙랑, 말갈 등과 패권다툼을 벌이며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꾸준히 대륙에서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변방족들이 강해지면서 중원이 여러 나라로 갈라지자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세력을 키우며, 영토를 확장 시켜가고 있었다.”
“특히 백제는 모용 씨의 전연이 전진에 멸망할 위기에 처하자 발해 연안에서 힘을 키우고 요서 지역으로 진출하려 하고 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고구려는 서기 369년 9월에 2만의 군사로 백제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그 치양전투에서 백제의 태자 근구수가 이끄는 군사에 패해 군사 5천을 잃고 오히려 몰리는 입장이 되었다. 또 고구려는 371년 9월에 군사를 동원하여 백제를 선제공격 하였다. 패하강가에 잠복해 있던 백제군의 복병의 공격에 패한 고구려는 퇴각하였으나 승세를 잡은 백제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371년 10월에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직접 3만 대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기습하기에 이른다. 고구려군은 수세에 몰렸고 군사를 지휘하던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화살을 맞았으며 결국 상처가 심해져 고구려 제16대 고국원왕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렇게 고구려와 백제의 사이는 형제의 나라에서 은원이 깊어집니다. 광개토왕 대에 와서야 일진일퇴의 상황이 정리되었다고는 하나 실제로는 광개토왕의 아들 장수왕 대에서 백제의 한성을 침몰시키고 개로왕을 참수하여 고국원왕에 대한 복수전이 마무리 됩니다. 또 343년 고국원왕이 동황성을 도읍으로 삼은 지 84년 만에 다시 평양성으로 돌아온 것도 이 장수왕 때이며(427년) 아버지 광개토왕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도 세우게 됩니다.
할아버지 고국원왕(16대), 큰아버지 소수림왕(17대), 아버지 고국양왕(18대) 또 아들 장수왕(20대)을 거치는 동안 송나라가 건립될 무렵의 대륙의 남쪽은 여전히 북위, 서량, 북량, 북연, 서진, 하 등의 나라가 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광개토왕 시대의 세계 약사를 고구려 실록 부록에서 옮겨봅니다.
“이 무렵 로마에서는 서로마의 발렌티아누스 2세가 피살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로마를 재통일 한다. 그리고 로마를 재통일한 테오도시우스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이교를 금지한다. 그 후 테오도시우스가 죽으면서 로마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줌에 따라 로마는 동. 서로 완전히 분리된다. 분리된 동. 서 로마는 각자의 독립적인 정권을 형성하며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이 같은 분단은 곧 로마 몰락의 원인이 된다.”
의 ‘협의회 자료실’에 들면 연재내용 1호부터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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