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선의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인 27일, 동아일보에 실린 시사만화에서 민심의 단면을 읽는다. 한 유권자가 후보를 향해 소리친다 - “국정 실패, 노인 폄훼” 두 번째 유권자의 “위장 전입, 위장 취업”에 이어 세 번째 유권자의 “은퇴 번복, 차떼기” 고함에 진땀 흘리는 후보들을 외면하는 유권자의 고민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 “찍을 후보 없으면 선거 다시 하나?”
투표용지가 30cm로 늘어나야할 만큼 후보는 역대 최다인 12명이나 되는데 찍을 후보가 없다는 아우성이 요란하다. 최선 아닌 차선도 언감생심 기대 못하고 최악을 피해 차악조차 택하기 쉽지 않다는 장탄식이다. 선택의 판단근거가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어서다. 근거를 제시하는 검찰도, 언론도 제각기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어 믿기 힘들다는 것이 바다건너에서도 느껴지는 한국대선의 딜레마다.
그러나 선거는 선거다. 싫든 좋든 이들 중 한명을 뽑아야 한다. 존경받는 지도자, 흠집 없는 리더에 대한 기대치는 이젠 낮추어야 할 것이다. 예전보다 ‘훌륭한’사람이 적어져서라기 보다는 ‘모든 정보를 누구나 공유하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온전한 위인의 실재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07대선은 정말 그처럼 저질인가. 모든 후보가 하나같이 부실하고 허약하고 초라한가.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평소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정치관을 가진 실력 있는 재미경제학자의 진단이다. “찍을 후보가 없다는 것은 좋아하는 후보가 없다는 뜻일 수 있고 그것은 경제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이번 선거에서 정치색이 대폭 빠진 때문일 것”이라고 전제한 그는 후보들의 자질과 능력을 보아도 “역대 대선에 비해 선택의 여지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경제는 그리 나쁘지 않다. 며칠 전 월스트릿저널의 짤막한 대선보도도 ‘4.5%의 견고한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한국민들은 변화를 원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안과 밖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몇 개월전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경제가 사람들을 그처럼 무섭게 사로잡은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경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지금 당장 사는 형편이 나빠졌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경제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5~10년 안에 세계시장에 내놓을 꿈이 없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경제수준 조차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방문객에게 조차 확실하게 체감되는 이 ‘두려움’이 온갖 의혹에도 불구하고 지지율 선두에서 추락하지 않고 있는 이명박의 ‘운 또는 힘’, 그리고 모든 후보가 ‘경제 대통령’을 자처하는 까닭일 것이다.
경제학자인 그에게 선두후보 3명의 경제공약을 가장 쉬운 말로 풀이해달라고 부탁해보았다. 각 후보의 기본 경제정책이 ‘누구에게, 왜, 이익 혹은 불이익을 줄 것인가, 실현 가능성은 있을까’ 에 대한 그의 대답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 정동영 후보의 ‘차별 없는 성장’은 성립되기 힘들다. 공산주의를 제외하곤 그런 경제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정책은 성장에 대한 별 고민이 보이지 않는 반재벌적 성향이 강하다. 성장이란 경제성이 있는 경제주체들이 이루어가는 것인데 현재 한국에선 재벌이 선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잘하는 중소기업들이 틈새시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전체 경제기여도는 그리 크지 못하다. 친기업적이 아닌 정책하에선 아무에게도 경제적 이득이 돌아오지 못한다. 가진자에 대한 과세가 심해지면 못가진자의 상대적 빈곤감이 덜해질 수는 있다.
정 후보의 경제정책 중 희망적인 것은 남북경협이다. 개성공단 같은 특구를 여러개 성공시킬 수 있다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명박 후보의 친기업적 정책은 투자증가를 확실하게 보장할 것이다. 경제란 이상해서 조금이라도 겁나는 요소가 있으면 빠르게 움츠러들다가도 분위기만 띄워주면 활발한 성장을 보인다. 이 후보는 747 등의 허황된 숫자공약에 매달리지 말고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는 오만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의 정책으로 불이익을 당할 계층은 별로 없을 것이다. 투자가 늘면 경제가 성장하면서 기업도 돈을 벌지만 일자리도 늘기 때문에 서민경제에도 그중 도움이 될 것이다. ‘노가다 판에서 성장해온’ 이 후보는 인기영합적이긴 할테지만 서민정서에 맞는 정책을 많이 내놓을 것이다.
- 이회창 후보의 ‘반듯한’ 사회는 불법시위나 파업이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경제가 바로 자리잡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서 서민친화적 정책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나 보복적 불이익도 우려되는 측면이다.
그는 설사 경제적으로는 가장 취약한 정동영후보가 당선된다하더라도 향후 5년의 경제는 지난 10년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앞으로 20일 한국의 유권자들이 각 후보들의 흠집과 약점에 절망하는 대신 그들의 공약을 열심히 ‘공부’하여 현명하게 선택한다면 예상외로 괜찮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바다건너에서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훨씬 편해질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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