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도 밥이요 보리밥도 밥이다. 조밥도 콩밥도 감자밥도 다 통들어 밥이다. 쌀이며 보리며 조며 콩이며 감자가 몇%가 되든 밥은 밥이다. 그런데 모래가 섞이면 썩 달라진다. 몇톨만 섞이면 이게 모래밥이지 밥이냐는 취급을 받는다. 모래를 일일이 골라내고 밥만 먹었으면서도 모래밥을 먹었다고 불평하거나 짜증내기 십상이다.
말과 거짓말의 관계 또한 이와 같다. 많고 많은 말 가운데 몇마디만 거짓말이 뒤섞여도 그말이 다 거짓말처럼 인식된다. 그 말을 한 사람은 거짓말쟁이로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다. 곰곰 따져보자. 입만 열만 거짓말을 한다고 낙인찍힌 사람이 실제로 하루에 하는 거짓말이 몇마디나 될까. 몇달전 미국 어느 대학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인이 하루에 쏟아내는 말은 대략 1만6,000단어쯤 된다고 한다. 제아무리 숙달된 거짓말쟁이라도 하루에 160단어를 거짓말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봤자 고작 1%다.
거짓말의 위력은 실로 거짓말처럼 위력적이다. 1%인지 그 이하인지 0.1%인지 그 미만인지 모를 극소량이 전체를 도배하고 규정한다. 거짓말쟁이로서는 억울하겠지만 이게 세상이다. 거짓말의 법칙은 또 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다른 거짓말이 필요해서다. 누군가 거짓말 아니냐고 따질수록, 혹 제 풀에 의심받는다는 생각에, 거짓말 덮기용 거짓말은 사방팔방 늘어난다. 생물학 용어를 빌어 이를 좀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거짓말의 분열생식(자가분열성 자가증식성)이라고 할까.
굳이 어떤 영화에서 유래한 리플리병이니 하는 것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금방 알아볼 수 있고 늘상 확인되는 거짓말의 법칙은 이밖에도 수두룩하다. 한번 하고나면 그 이후 가만 있어도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즉, 시간이 흐른다고 거저 감가상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은 거꾸로다. 가중치가 더 붙는다. 생각해보라. 올해 추수감사절날 한 거짓말이 내년 추수감사절이 됐다고, 그 사이에 그 거짓말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고, 저절로 없어지는가. 올해 거짓말은 그것대로 남고 1년이나 됐는데도 그냥 어영부영 뭉갰다는, 그래서 정말 고약한 거짓말쟁이라는 덤터기까지 쓰게 된다. 고로 애당초 안해야 옳지만 어쩌다 해버린 거짓말이라면 ‘서둘러서, 남들이 알아듣게’ 참회하는 게 상책이요 첩경이다.
더욱더 놀라운 법칙이 있다. 아니 통계다. 거짓말쟁이는 이런 상책 겸 첩경을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놀라울 정도로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죽어라고 자기 죽을 꾀만 낸다. 북가주 한인사회에도 사례는 숱하다. 크든 작든 고의든 실수든 오류가 발생하면 누가 뭐라기 전에 알아서 고치고 양해를 구해야 할텐데 잘못이 뻔히 드러났는데도 모르쇠나 거짓말로 얼버무리려다 끝내 자기발등을 찍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위증 등 혐의로 최근 기소된 메이저리그 홈런왕 배리 본즈 역시 그 꼴이다. 마크 맥과이어나 제이슨 지암비 등 다른 선수들처럼 금지약물 복용사실을 솔직하게 시인했더라면 오히려 박수를 받거나 몇게임 출장정지쯤에서 마무리됐을 것을 죽어라고 부인하고 시치미떼다 진짜 죽게 생겼다. 시즌 최다홈런(2001년 73개)과 통산 최다홈런(현재 762개) 통산 최다볼넷(2,558개) 등 온갖 신기록 보유자인 그가 이미 예약해놓은 명예의 전당 대신 불명예의 감옥을 가야할지도 모르는 처지로 뒤바꾼 것 역시 거짓말이다. 한마디로 손에 든 방망이를 기차게 다뤄 상대방을 무수히 넉다운시켰으나 입 안에 든 혀를 잘못 놀려 하나뿐인 자신을 파멸로 내몰고 있는 지경이다. 지난 여름 통산 최다홈런 기록을 경신하고 그 후로 몇개를 더 쳤으니(칠 때마다 신기록이다) 예년 같으면 그는 올해 가장 풍성한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아마도 그는 생애 가장 불안하고 초조한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내고 있을 게다. 지금 그는 목덜미 언저리까지 덮친 듯한 법의 올가미를 빠져나가기 위해 새롭고 기발한 거짓말을 궁리하고 있을까, 아니면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하고 있을까, 때는 늦었지만 만인 앞에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구하리라 마음먹고 있을까.
최근 몇달동안 한국의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한 각종 스캔들도 거의다 당사자들이 감추고 줄이고픈 욕심에 거짓말을 늘어놓았다가 도리어 백배천배 뻥튀기시킨 것들이다. 다니지도 않은 예일대를 팔았다가 신세를 망친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는 차치하자. 그와의 커넥션 때문에 의심을 받았던 변양균 전 청와대정책실장이 사건초기에 기자들의 확인취재를 피하느라, 신 전 교수 등과 말을 맞추느라 남몰래 쏟은 에너지의 10분의 1, 100분의 1만이라도 써 잘못된 관계를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더라면 그렇게까지 만신창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 한창 세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사안들-삼성 비자금 사건,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 등등-도 당사자들 입장에서 ‘원치 않은 유명사건’으로 만든 촉매제는 바로 그들이 내뱉은 거짓말 때문이다.
물론 자기 죽자고 거짓말을 하는 이는 없다. 딴에는 다 자기를 위한다고, 보호한다고, 혹은 남을 해치려고 뱉은 말이다. 그런데 결국 자기가 죽는다. 거짓말. 누구 말대로 그것은 통할 때는 그것처럼 달콤한 것이 없지만 안통할 때는 그것처럼 황망한 것이 없다. 그리고 한번 입밖에 뱉으면 그것을 유지시키기 위해 또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니 그때부터는 거짓말을 한 사람이 거짓말의 포로가 된다. 메이저리그 22년동안 최대풍년을 기록하고도 가장 초라한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있는 배리 본즈로부터 거짓말에 관한 진실을 또 배운다.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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