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맑은 가을 하늘을 남겨 둔 채 고향을 떠나는 기분으로 파리의 드골 공항을 경유하여 덴마크의 코펜하겐까지 가는데 비행시간만 9시간이 걸렸다. 시차가 뉴욕과 6시간이 나기에, 한밤중에 주는 아침 기내식에 나오는 포도주에서 정겨운 불란서의 분위기가 가까워 오고, 뉴욕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즉 북유럽 중에서 제일 개인소득이 많고 최고의 복지 국가인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의 아침! 도시가 온통 동화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듯, 세계적인 동화 작가 안델센이 이곳에서 탄생한 이유를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하게 떠오르는 촉촉한 대지 위엔 해맑음과 쾌적함이 덮여 있었다.북해와 발틱해가 맞닿은 좁은 해협에 위치한 코펜하겐 항구 입구, 인공 운하로 둘러싼 별 모양의 카스텔렛 공원의 한적한 바닷가 한 모퉁이에 끝내 못 이룬 사랑 때문에 죽어서 물거품이 되어 버린 인어공주의 애처로운 동상이 북해의 잔잔한 바다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외로이 앉아있었다. 인어공주 동화를 읽고 펑펑 눈물을 흘렸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아 감회가 새로웠다.
코펜하겐은 깨끗한 자연 환경에 시가지는 잘 정돈되어 있으며, 도로마다 인도와 자전거 전용도로가 따로 구분되어 있는데 사람이나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우선이다. 잘 사는 부자나라이지만 석유를 아끼고 공해를 줄이기 위해 자전거타기를 권장하여 매연도 없애고 국민 체력 단련에도 일조하는 국민성이 본받을 만 했다. 덴마크에 도착하면 처음 듣게 되는 충고가 자전거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때문에 모든 공공장소나 역전에는 자전거 파킹장이 따로 있고 신비스러울 정도로 많은 자전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탄탄한 경제를 바탕으로 국민의 최저 임금이 시간당 20달러로, 어느 직업이든 한 달에 최하 5,000달러가 보장된다. 또 교육비와 의료비가 무료이며 노후의 은퇴를 국가가 보장하지만 그에
대한 세금이 만만치 않는데, 맥주에 붙는 세금이 55%이상이라 맥주 한 피처에 65달러라니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가죽과 도자기로도 유명한 이곳 덴마크에서는 가는 곳마다 로맨틱한 마로니에 가로수가 우리를 반겨주었다.하얀 토담 벽에 억새풀로 이어 만든 전통적인 검정 초가지붕이 아직도 시가지나 시골에 많이 남아있어 옛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고, 빨간 삼각형의 뾰족 지붕을 가진 조그마한 벽돌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는 것이 훈훈하고 다정해 보인다.
몸집보다 유리창이 큰 노란색 전기 버스와 지하철이 대중교통이며, 자가용 차량통행이 적어 도로가 한가했으며 그나마 6기통 이상의 대형 자가용 차량은 보기 힘들다.
5층 미만인 모든 시가지 건물이 색색이 다른 예쁜 색으로 칠해져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다. 독일 북부의 유틀란드 반도의 일부와 400개의 섬들로 구성된 이 나라는 폴란드의 영향으로 운하와 터널이 많고 유럽 최초의 놀이터인 티볼리(Tivoli)가 있는, 한마디로 동화 속의 나라이다.시청광장에서 1시간 마다 출발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색다른 활엽수와 하얀 자작나무의 울창한 숲속을 따라 50분간 북상하면 유명한 중세의 고성인 프레데릭스보그 국립 박물관을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선 옛 왕실의 화려한 생활과 덴마크의 깊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에서 동북쪽으로 20분간 발틱해의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스웨덴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셰익스피어의 희극 ‘햄릿’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고색창연한 크론보그성채에 도달하게 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며 피를 토하듯 절규하던 햄릿의 독백을 북해의 차가운 바람과 함께 들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도 코펜하겐이 속해 있는 질란드 섬에서 E20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한 시간 반을 가면 덴마크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로 12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유럽에서 제일 길다는 1마일 길이의 현수교가 나타난다. 끝도 보이지 않는 이 다리를 건너야 동화의 섬, 퓨넨 섬에 도착하고 30분을 더 가서야 덴마크 제3의 도시이자 안델센 생가가 있는 동화의 도시 ‘오덴세(Odense)’에 이르렀다.
말로만 듣던 오덴세는 동화의 주인공을 만들어 낸 작가의 마을처럼 온 도시가 동화와도 같다. 빨강 지붕에 연한 노란색 벽의 작고 아담한 집들, 꼬불꼬불한 골목길, 집집마다 창가에 놓은 꽃들, 옛 것을 그대로 보전해 온 인형들만이 살 것 같은 도시이다. 오랫동안 손때가 묻어 거무스레해진 장난감 같은 살림살이들을 보니 안델센이 세계적인 동화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누구나 오덴세에 들어서면 군데군데 나부끼는 현수막이나 초상화로 이곳이 곧 안델센의 도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안델센의 생가가 있는 좁은 골목길에는 아름다운 꽃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고, 골목과 집들은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가에 들어서는 순간,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인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란 그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안델센이 지은 불멸의 동화인 ‘인어공주’와 ‘미운 오리새끼들’을 다시 한 번 회상하며 요정과 같은 이 섬을 뒤로하고 벨트 다리를 건너 유틀란드 반도의 덴마크 땅을 향해 다시 북상하다보면 빨갛고 노란 야생 사과나무들이 가을을 수놓고 있다.끝도 안 보이는 검게 기름진 완만한 구릉의 평야에는 노란 가을 유채꽃밭이 수평선을 이루며 나그네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있다.
유럽대륙에 속해있는 유틀란드 반도의 땅은 덴마크 총면적의 69%나 차지하는 큰 면적이면서도 발전이 늦은 지역이지만, 방풍림으로 둘러싸인 넓고 기름진 땅으로 진짜 덴마크를 볼 수 있는 낙농과 농장이 잘 어울려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지역이다. 오덴세에서 3시간 만에 도착된 인구 75만의 덴마크 제 2의 도시인 프레데릭스 하븐은 유트란드 반도 최북단에 있으며 1,200년 전에 바이킹 족들의 근거지로 발전해 온 항구도시이다.
유럽 각지로 향하는 수많은 여객선과 화물선의 운항으로 매우 바쁜 항구여서 밤새 매우 시끄러울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뱃고동 소리 한 번 들리지 않는 아주 조용한 분위기가 놀라웠고, 또한 이곳에서 남을 배려하는 그들의 훌륭한 민족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 수퍼마켓에서는 봉투를 주지 않아서 산 물건을 담으려면 각자 집에서 봉투를 가져와서 담아가야 하며, 봉투가 필요하면 크기에 관계없이 미화로 50센트를 내야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검소함과 절약정신을 배워야겠다 싶다.
항상 어린이를 먼저 배려하고 정직하며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조용한 그들의 민족성을 부러워하면서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 모네의 저녁종과 같은 은은한 그림의 나라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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