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 불법체류자들은 희망에 들떠있었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사면’이든, ‘신분 합법화의 길’이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었다. 반이민파 공화의원들이 대거 낙선하고 ‘친 이민’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라면 자신들에게 살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이들은 확신했었다. 1월초 새 연방의회의 우선과제에 이민개혁안이 포함되지 않았을 때도 실망하지 않았다. 초당적 합의를 강조하는 정치기류 변화가 희망적이라고 낙관했다.
연초 내내 감감 무소식이던 이민개혁안이 상정된 것은 3월하순이 다 되어서였다. 그러나 영 지지부진한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이민커뮤니티에선 점점 의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다 무산되는 건 아닐까, 불안이 엄습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6월말 이민개혁안은 결국 상원에서 죽어버렸다.
친이민, 반이민에 앞서 그것은 연방의회의 직무유기였다. 연방부터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정부에 갖가지 문제를 야기시킬 정도로 비효율적인 현 이민법을 개혁해야하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물거품이 된 것은 불체자 사면만이 아니다. 국경에서 직장까지 불법이민증가를 막는 단속강화대책도 함께 사라졌다. 그대로 남아있을 1,200만명에 더해 매년 1백만명씩 더 늘어날 불법이민에 대한 근본대책이 당쟁에 밀려 올해도 마련되지 못한 것이다.
연방이 무책임하게 던져버린 책임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맡은 것은 주민들의 일상을 돌보아야하는 지역정부들이다. 2007년 상반기에만 1,400여건의 이민관련 법안이 각 주의회에 상정되었다. 2006년 한해 전체보다 2배이상 늘어났다. 불체자에 피난처 제공을 중범화하고 지역경찰에 이민신분 검문권을 수여하는 등의 초강경법안을 통과시킨 오클라호마처럼 반 이민법이 대부분이지만 친이민 규정들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것이 뉴욕주의 불법체류자 운전면허 발급 계획이었다. 그러나 발표한지 두달이 채 못된 어제, 14일 엘리옷 스피처주지사는 발급계획을 전면 포기했다. 반대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정도가 너무 심했다. 80% 반대로 집계된 일반 여론조사만이 아니었다. 주정부내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었다. 중단소송이 제기되었는가 하면 DMV 공무원들은 만약 시행되면 이민국에 불체자 명단 넘기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무면허·무보험 불체 운전자들이 주민일상에 얼마나 위험한가 등의 설득노력은 도무지 먹혀들지 않았다.
이같은 반감을 등에 업고 어느새 ‘이민’은 대선을 비롯한 2008년 캠페인을 겨냥한 주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에겐 전혀 달갑지 않은 현상이다. 입장표명이 영 난감하기 때문이다. 최근 아이오와 후보토론에서 나온 힐러리의 궁색한 답변이 전형적이다. 불체자 운전면허 발급을 지지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합리적이긴 하지만…난 지지한다고는 말한 적은 없다’면서 이런 상황이 이민법개혁안을 성사시키지 못한 부시의 탓이라 공격했다. ‘힐러리다운’ 명쾌하고 논리적인 답변이 아니었다.
대선 뿐 아니라 상하원 선거까지 포함해, 어느 민주당 후보도 보수표밭에 가서 그 이상의 답변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정부가 불법이민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불법을 자행할 수 있느냐’며 따지는 유권자의 분노 앞에서 의연하게 ‘친 불법이민’의 입장을 천명할 후보는 없을 테니까.
최근 재도약 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는 지난 주 아이오와 유세중 걱정스럽게 말했다. “공화당은 딱 두가지 이슈를 들고 나올 것이다. 테러와 이민이다” 특히 이민이슈를 놓고 상당히 선동적 캠페인을 벌일 것으로 우려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이민’에 대한 위험은 이미 감지하고 있다. 지난 주 버지니아, 뉴욕 등 지역선거에서 친이민 후보가 열세에 몰리고 드림법안 반대 표명 후보가 낙승하는 등 민주당의 선거결과가 위기감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좀더 강경한 이민대책을 세우자는 당내의 보이스도 상당히 커졌다. 친 이민계와의 언쟁이 담 너머로 들릴 정도다.
유권자의 반감은 단순히 문화적·이념적 갈등에서만 오지는 않는다. 역사적으로 반이민정서가 큰 파괴력을 가지는 것은 경기침체와 맞물렸을 때다. 주택시장이 흔들리고 개솔린 가격이 치솟는 와중에서 치러진 지난주 선거에 대한 민주당의 자체분석은 “‘이민’이 경제이슈화 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2008년 캠페인에서 ‘이민’이 어느 정도 이슈화 될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민주당 후보들의 입장은 예상할 수 있을 듯하다. 될수록 피해가다가 어쩔 수없이 맞부딪치면 국경경비 강화등 강력단속을 강조할 것이다, ‘신분 합법화’는 아예 입에 담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불체자 사면보다는 백악관 탈환이 우선’이다. 서운해 할 것도 없이 선거전에선 당연한 기본 전략이다. 그래도 착잡한 느낌은 앙금처럼 남는다. 그토록 설레이며 응원했던 민주당에도 외면당한채 다시 2년 넘게 어두운 그늘에서 숨죽이며 견디어야하는 불체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중엔 한인도 25만명이나 된다.
박 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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