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쌀쌀해지니 더욱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진다. 창작에서는 무(無)에서 유(有)가 나오는 법이 거의 없고, 유에서 유가 나오기 때문에,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더 좋은 글이 나온다.
해외에서 쓰는 한국어 작품들이 수준이 낮다면, 그것은 고전을 비롯한 좋은 한국 책 들을 구할 수 없는 조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 신문에서 신간 서적들이 나온 것을 알고 서점에 주문을 하지만, 내용을 모르고 비싼 값을 내야 하므로 답답하다. 시립 도서관에 있는 한국 책들도 한계가 있고, 그곳에서 새로 구입되는 책들이 대개 하찮은 외국책의 한국 번역들이라 섭섭하다.
한국에서 하루에 새로 출판되어 나오는 책이 몇 백 권씩 되는데, 피오 피코를 비롯한 이곳 시립 도서관에 들어오는 책들은 너무 적고 다양치 못하다. 도서 구입을 담당하고 있는 한인 직원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한국인이 지은 양서들을 빨리 많이 구입하도록 추천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금 각급 학교와 시, 구 단위에서까지 도서관 운동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장서량이 수준급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그리고 농어촌과 산간, 도서 지방, 군부대 등 문화 시설이 미비한 지역에 정부나 자치기관 운영 도서관이 더 많이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문화 수준은 그 나라 도서관의 장서량과 수준을 보면 알 수 있다. 16세기부터 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프랑스에서 출판되는 모든 책과 정기 간행물을 의무적으로 한 부씩 이 도서관에 제출케 하여, 돈 안들이고도 오늘날의 방대한 역사적 장서를 확보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한 도서관이라도 국내 장서를 완전하게 모으려면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공공 도서관의 개념이 약한 한국에서도 이제는 국민들이 도서관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 책과 미디어를 통해 공부를 하고 마음의 양식을 얻어야 하는 것은 학생이나 교수뿐 아니라, 오히려 모든 국민과 열악한 생활환경에 처한 사람들이다.
정약용은 귀양살이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그의 책의 대부분을 썼고 최근에도 박노해와 김남주 시인 같은 이들이 감옥에서 작품을 쓰고 있다.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외가의 도움으로 서가에 책 천삼사백 권을 꽂아 놓고 공부를 했다고 했다.
또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대작 ‘옥중 수고’를 쓴 그람시는 교도소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서 보고 신문을 여러 개 읽었으며, 외부 서점에서 우송하는 정기 간행물을 직접 받아 읽으며 모자라는 대로 글을 쓸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현재도 교도소에 이런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열악한 환경에 종이와 필기 도구조차 반입이 안 되고 있다. 교도소는 사람들이 외부 세상과 단절되어 소식도 모르고 절망에 빠져있어서 다른 어떤 곳 보다 도서관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비인간적인 조건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책과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루 속히 교도소 도서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소관이며, 출판사들은 군대에만 책을 기증하지 말고 교도소에도 책을 많이 보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도서관을 필요로 하고 매일 책을 읽고 써야 하는 사람들은 지식인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다. 농민, 노동자, 군인, 재소자 등 문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더욱 더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부와 자치 단체와 언론,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서 도서관을 많이 만들고 도서관에 장서를 많이 확보하게 하면, 불황에 빠진 출판계와 작가들이 용기를 얻어 더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들게 될 것이다.
책 읽기가 기득권 계층의 특권이 아닌 모든 국민의 일상생활이 되는 날,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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