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친근한 이솝 우화 중에 ‘나귀와 강아지’ 이야기가 있다. 나귀는 하루 종일 장작을 나르며 고되게 일을 하는데 강아지는 주인 앞에서 재롱을 부리며 귀염을 받는 것이 일이었다.
나귀는 강아지에게 샘이 났다. 자신도 일만 할 게 아니라 주인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면 강아지처럼 귀염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구간에 있어야 할 나귀가 뛰쳐나와 큰 몸을 흔들며 겅중겅중 춤을 추니 집안이 어찌 되었겠는가.
집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주인이 위험하다고 여긴 하인들은 몽둥이로 나귀를 두들겨 패서 나귀는 결국 죽고 말았다. 나귀는 마지막 숨을 거두며 탄식했다. “왜 나는 타고난 나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겨우 강아지 따위를 흉내 내려 했을까!”
“너 자신을 알라”는 이솝 식의 풀이이다. 제3자의 눈으로 보면 나귀와 재롱은 물과 기름처럼 안 어울리는 데 나귀 자신만 그 사실을 몰라서 화를 당하고 말았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이솝은 나귀를 빌어 꼬집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국이 시끌시끌하다. ‘대쪽’ 이미지가 최대 자산인 그가 ‘대쪽’이 꺾인 남세스런 모습으로, 조직과 자금력의 열세를 안은 채 막판에 뛰어들어 얼마나 승산이 있을지, 전문가들의 분석과 그가 보이는 의욕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대권이라는 신기루 앞에 서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일까. 대선의 해를 통과하며 우리는 여러 인사들이 평소의 냉철함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아왔다. 자기 분야에서 존경받던 사람들이 대선후보로 거론만 되면 우왕좌왕 하다가 스타일을 구기고, 남이 보면 당선 가능성 0%인 인사들이 기어이 출마하겠다며 싸움판에 머리를 들이민다.
이번 대선전이 2파전이다, 3파전이다 하지만 중앙선관위에 예비후보자로 등록된 사람은 무려 143명이나 된다. 오는 25일 후보등록을 거쳐 정식으로 출마할 사람만 꼽아도 정당 선출 후보 6명에 무소속 후보들을 합쳐 10여명 선. 대부분은 떨어질 것이 100% 확실한 후보들이다.
그런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출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정치적인 이유들이 깔려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객관적 판단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로 인해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그리스의 7대 현인 중 한사람인 탈레스가 한 말로 전해진다.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했고, 가장 쉬운 일은 남을 충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남의 눈의 티는 그렇게도 잘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는 이치이다.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도 같은 논리이다. 자기합리화라는 색안경 때문에 우리는 종종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다.
다음은 ‘거울’이 문제이다. 20세기 초 사회학자인 찰스 쿨리가 주장한 거울 자아 이론의 ‘거울’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듯 사람들은 주변의 타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자아개념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미국인 남성과 결혼한 한 여성이 재미있는 고백을 했다. 몸매가 통통한 편인 그 여성은 얼마 전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볼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살쪘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이라는 ‘거울’이 너무 자상한 게 문제였다. 이따금 그가 “나 요즘 살찌지 않았느냐”고 물어도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이 “천만에. 당신은 완벽해. 당신은 너무 예뻐”였으니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대선에 뛰어든 후보들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냉정함을 잃지 않다가도 “당신만한 사람 없다. 당신이 나서야 한다”며 옆에서 지지자들이 계속 부추기면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을 장사가 없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눈을 멀게 만드는 것은 욕심. 마음에 욕심이 끼어들면 눈이 있어도 앞을 보지 못한다. ‘나귀’가 갑자기 ‘강아지’가 되겠다고 나서는 형국이 되고 만다.
“자기의 분수를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노자는 가르쳤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안다는 말. 세상이 소란스러운 것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나귀’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따금 제3자의 눈으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