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은 20세기 팬터지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J.R.R. 톨킨의 같은 이름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3부작을 합쳐 무려 9시간(나중에 나온 무삭제판으로는 11시간)에 걸친 작품으로 원본에 약간 손질을 하긴 했지만 그만하면 내용도 충실하고 영화의 강점을 살린 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화는 어떻게 ‘어둠의 제왕’ 사우론이 인간과 난쟁이, 엘프들을 위해 19개의 반지를 만들어 주고 이를 모두 지배할 수 있는 비밀 반지를 만들어 자기가 가졌는지를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영화의 메인 스토리가 전개되기 3,500년 전 인간과 엘프 연합군대 사우론의 세력간의 대회전이 벌어지는데 연합군은 마법의 반지를 낀 사우론에 당해내지 못하고 궤멸 직전에 놓인다. 이 때 곤도의 왕 이실두어는 극적으로 사우론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반지를 차지함으로써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이와 함께 그는 이 반지를 ‘멸망 산’(Mount Doom)의 용암 속에 던짐으로써 세상에서 악을 완전히 몰아낼 찬스를 얻는다. 이 반지는 이곳 용암 속에서만 없앨 수 있다. 그는 용암 호수의 문턱까지 가지만 반지가 주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반지는 내 것이야를 외치며 돌아선다. 이실두어는 곧 암살되고 반지는 강물 속에 묻히며 이렇게 해 악은 다시 살아나게 된다. 인간은 무엇보다 권력을 원하며 그에 의해 쉽게 타락한다고 내레이터는 설명한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반지는 괴물 골럼을 거쳐 빌보 배긴즈, 프로도 배긴즈에게로 전해지며 프로도가 이 반지를 없애려 갖은 고생을 하며 ‘멸망 산’까지 가는 것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그러나 착하디착한 프로도 마저 ‘멸망 산’ 문턱에서는 이실두어와 마찬가지로 반지는 내 것이야를 외치며 돌아선다. 반지를 되찾으려는 골럼과의 필사적인 투쟁 끝에 반지를 손에 쥔 골럼이 용암 속으로 떨어져서야 악과 권력의 화신인 반지는 사라진다.
지금 이 ‘반지의 제왕’ 스토리의 복사판이 한국 정치판에서 벌어지려 하고 있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당선이 유력했다. 그러나 한나라 당내 경선에서 이 후보에게 진 이인제 후보가 당을 뛰쳐나가 독자 출마함으로써 보수 표를 분산시켰고 그 결과 어부지리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자신의 탈당과 출마를 정당화하기 위한 여러 이유를 댔지만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했다.
이같은 경선 불복의 악습을 막기 위해 한국은 당내 경선에서 진 후 독자 출마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질 것이 뻔한 후보가 경선 전 탈당해 급조 신당에 합류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손학규 후보다. 새로 간 당내 경선에서 손후보가 참패함으로써 사실상의 경선 불복이 이번에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가 보다 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순간 이번에는 정계 은퇴 선언까지 한 이회창 씨가 자기가 만든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독자 출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씨의 이런 행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스캔들로 치명타를 맞을 경우에 대비한 ‘스페어 후보’라는 설, 이번 대선보다 내년 총선을 바라보고 영향력 확보를 위한 작전이라는 설 등이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이회창 씨의 권력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에 이런 모든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이다. 경선 불복을 했거나 사실상 경선 불복을 하려는 사람 모두 서울대 출신이고 보면 엘리트주의에 빠진 서울대 교육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남들이 땀 흘려 경선 캠페인을 벌일 때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막판에 와서 대통령을 하겠다고 톰방 뛰어드는 것은 정치도의도 아닐뿐더러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은 이런 사람들이 설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데서 출발한다. ‘이인제 학습 효과’가 있는 한국민들은 이번에는 10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유력하다. 한국 유권자들이 올해를 실제와 사실상 포함 모든 경선 불복자 추방 원년으로 삼기를 기대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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